사설.칼럼
【칼럼】김정은과 조선 광해군의 다른 점!
안병일 = 한국스카우트 서울남부연맹 사무처장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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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29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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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일 = 글로벌사이버대 겸임교수 및 본지 전북취재본부 논설위원.     © 김현종 기자

우리들은 유년시절부터 역사를 공부하면서 5천년이라는 찬란한 역사적인 전통과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자라왔다.

 

유구한 시간동안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여 단일민족으로서의 역사를 계승해 온 우리들은 난국에 처했을 때마다 세상을 놀라게 할 정도로 단합된 결속력을 보여 줬다.

 

이러한 우리들의 자부심과 긍지로 형성되어진 정체성과 전통은 사회적 통합과 단일민족으로서의 결속을 다지는 지속적인 동기(기제)로 작동돼 왔으며 찬란한 역사적인 문화의 전통과 유산을 수호하면서 애국심과 민족정신의 고양으로 승화돼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5천년의 찬란한 역사와 전통, 단일민족으로서의 역사를 계승하기 위해 오랜 시간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 조국의 안위를 수호하고자 몸을 던져 조국의 품에 안겼으며 어려움이 따를 때마다 민족의 단합으로 이를 현명하게 극복해 왔다.

 

특히, 한국전쟁 때에는 어린 학도병 2,700여명이 북한의 잔학무도한 침공을 막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면서 까지 맨몸으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선에 나가 국가의 안위를 위해 헌신하였고 많은 학생들이 숭고한 희생을 겪는 등 쓰라린 아픔을 겪었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체제로 이어지고 있는데 김정은은 스물아홉에 원수로 진급하고 서른셋에는 북한의 최고 권력기구인 국무위원회위원장을 맡는 등 북한 내부에서의 자리를 굳혀 가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은 2013년 제3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4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자행하여 국제사회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간부들에 대한 동향감시를 강화함은 물론 본보기식 숙청 및 처형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다.

 

김정은은 핵실험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압박으로 인해 돈줄이 말라가기 시작하자 해외의 금융기관을 해킹하는 등 추태를 자행하고 있으며 현재는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지만 앞으로 대북제재가 증대될 경우 북한의 고난행군은 계속되어져 경제난이 도래돼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 서른셋의 나이에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국무위원회위원장을 맡았을 때 조선의 광해군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광해군은 1575년에 선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임진왜란 일어난 해인 1592년에 세자로 책봉되었고 1608년 서른셋의 나이에 왕좌에 올랐다.

 

조선의 광해군은 임진왜란 중에 세자로 책봉되어 분조(分朝-임진왜란 때 선조가 세자인 광해군에게 명하여 임시로 두었던 조정 또는 비상사태 발생 시에 임금의 명에 의해 조정을 분리하여 통치하는 일)를 맡아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 줬다.

 

광해군은 여러 가지의 어려운 환경요인에 의해 불안한 출발로 왕권이 흔들리기도 했으며 왕좌에 올라 4년 만에 김직재의 옥사(1612, 광해군 때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대북파가 영창대군을 옹호하던 소북파를 제거하려고 일으킨 옥사)가 일어나 수백여 명을 숙청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에 황폐화된 성지(城地)와 병기(兵器)를 정비함은 물론 많은 군사를 양성하는 등 국방방비(國防防備), 특히 국경방비(國境防備) 증강에 전력을 다했다.

 

또한 명나라와 후금 간에 전쟁 발생하여 명나라에서 원군을 요청하자 1만 여명의 군사를 파견하기도 했다.

 

더불어 광해군은 명나라에 파견된 강홍립에게 명하여 의도적으로 후금에게 투항시켜 명과 후금 간에 능숙한 중립외교역량을 발휘했다.

 

또한 일본과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임진왜란 후 중단됐던 외교를 재개함은 물론 오윤겸을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로 파견하여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던 우리백성들을 데려왔다.

 

또 광해군은 국조보감용비어천가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신속삼감행실도 등을 재 간행하고 적상산성에 사고를 설치하는 등 나라의 근간 중의 하나인 서적의 간행에도 힘을 기울인 국왕이었다.

 

광해군과 김정은의 닮은 것은 무엇일까?

 

조선의 광해군이 서른셋의 나이에 왕좌에 올랐고 북한의 김정은도 같은 나이에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국무위원회위원장을 맡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해군과 김정은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조선의 광해군은 동족이 아닌 외세의 침략을 막고 국력을 증강하기 위해 성지와 병장기를 정비하고 많은 군사를 양성하면서 능숙한 중립적 외교정책으로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애쓴 반면 북한의 김정은은 외세의 침략을 막고 국력을 증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동족인 우리를 향해 총칼을 겨누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우리가 조상들이 살아온 역사를 계승하고 살피려 함은 역사의 다양성을 배워 우리 사회의 특징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현대 사회의 문제를 창의적이며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 오늘을 반성하면서 현 시대에 걸 맞는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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