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취재수첩】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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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1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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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정 기자 = 브레이크뉴스 전북취재본부 동부총국.  

행복은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이다.

 

고대광실 높은 집에 좋은 승용차를 타고 다녀도 행복하지 않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힘겹게 살아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 남이 보는 행복과 내가 느끼는 행복이 다르다는 뜻으로 돈과 권력(명예)은 일시적 착시현상일 뿐 궁극적인 행복의 조건은 아니며 자신만이 꿈꾸는 세상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전하는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식과 부모부부관계에 대한 시니컬한 유머들이 난무하는 세상에 아기 예수의 탄생절인 성탄을 앞두고 구세주 예수님은 죽음과 고통불안과 두려움을 이기는 평화와 구원을 준다는 것을 확신하며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속 깊이 되새겨 본다.

 

하늘은 두 가지 표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볼 때, 하늘은 나의 진심과 믿음을 학인해주고 지켜주는 든든한 보루가 된다.

 

또한, "하늘이 무섭지 않은가! 천벌을 받을" 이라는 표현에서 하늘은 두렵고 공평하며 정의로우신 하나님을 고백하게 해준다.

 

이렇듯 하늘은 경외감과 거룩함자비와 정의를 동시에 깨닫게 해 주는 가장 적절한 종교적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소신을 갖고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비판과 반대에 맞서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것이 종교적 신념이라면 더 큰 저항에 직면하는 것은 절대적 가치인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한 제자들과 바오르 사도도, 당시 유다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의 신념과 다른 신앙을 선포하면서 적지 않은 이들의 반대와 비방에 맞서야 했다.

 

때로 자신의 뜻과 다른 일을 겪을 때 바오로 사도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고 그것이 성령께서 이끄시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의 믿음은 자신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 없이는 생길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반대 받는 표적이 될 것임을 예견하시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하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대부분 미움과 비난을 받으면 그것이 나에 대한 인격적 모독이라고 생각해 분노하거나 좌절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받는 미움이 이미 박해와 모욕을 달게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당신의 이름 때문이라고 확신하면 담대히 견디어 낼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필자의 지인들은 간혹 '하나님을 믿으면 행복한 일만 생겨야 하는데, 왜 여전히 고통이 많은지' 묻는다.

 

우리의 믿음은 언제나 역설적인 것 같다.

 

믿음은 고통과 악이 없는 세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어 내는 능력을희망하는 능력을위로하고 격려하며 협력해 하나님의 뜻을 찾는 능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세상살이에 걸림돌이 되더라도 그 길이 예수님께서 가신 길임을 믿는다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을 얻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한복음 15장 16절)."

 

여기서'내 이름'으로 청하려면 그 이름이 가진 권위와 능력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하고 예수님의 구원 능력과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고백하기에 우리는 언제나 기도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이라고 한다.

 

3~4세기에 예수님을 한낱 인간으로 여기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을 얻으신 분이라고 폄하해 온 아리우스 이단이 있었다.

 

이러한 이단과 투쟁하며 많은 교부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고백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라는 신앙을 지켜냈다.

 

그 바탕에 단순하면서도 간절하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살아온 신자(성도)들의 '신앙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신앙 감각으로 제자들은 그들이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신비를 보았고 자비와 사랑이신 하나님을 보게 해 주신 분이심을 확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통하여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고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나의 관심과 마음이 아닌 "예수님의 지향과 마음"으로 기도할 때 말이다.

 

바오로 사도는 아폴로라는 유다인이 지닌 달변과 성경에 정통한 능력을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열정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전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통하여 성장하며 살아간다.

 

그들의 능력을 내 이익의 도구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전하는 힘으로 청할 때 관계 속에서 내 자신이 성장하며 지금은 비록 힘들어도 보이지 않는 힘이 되는 내 배우자와 가족형제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용기를 가져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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