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취재수첩】'문화재지킴이의 날' 선포!
이용찬 = 브레이크뉴스 전북취재본부 지방부&문화부장
이용찬 기자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18/06/18 [14:37]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이용찬 = 브레이크뉴스 전북취재본부 지방부&문화부장. 

오는 22일 전국에서 활동하는 10만 문화재지킴이들이 춘추관의 옛 터인 경복궁 수정전 일원에서 공식적인 "문화재지킴이의 날" 선포식을 갖는다.

 

이 땅의 유서 깊은 역사와 문화유산을 지키려던 노력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거기에는 아직도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를 얻지 못하고 있는 후백제 부흥운동이나 고구려의 부흥운동과 같은 무형적 자산들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늘 세계사 속에서 자료 기근국가라는 오명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서구와 중국, 일본 등의 국제적 시선은 1997101, 유네스코가 우리의 역사서 '조선왕조실록'을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이전까지의 인식에서 세계의 시선에 경악과 함께 새로운 경외의 대상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했던 역사적 계기를 마련한바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정부가 19731231일 국보 제151-1호와 제151-3호로 지정, 관리해 오던 것이다.

 

622(음력)은 시대를 뛰어넘어 조선시대 문화재지킴이들이 국난의 상황에서 우리의 공식적인 국가기록문화유산을 자비로 지켜냈던 역사적인 날이다.

 

따라서 622일을 전국의 우리 문화재지킴이들이 '문화재지킴이의 날'로 선포하고 이날을 기념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너무나 가슴 뭉클한 감회에 젖게 한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적인 쾌거는 민초들의 공적을 관료들의 공적으로 찬탈했던 혼돈의 역사 속에서 정읍 선비들의 노력도 한낱 부질없는 영웅담에 지나지 않았고, 그 위대했던 역사 또한 423년이 지난 20156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바람직한 역사로 밝혀진바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내장산으로 옮겨져 보관되었던 '용굴암은적암(은봉암)비래암'의 위치가 전라북도 기념물로 공식 천명된 시기는 201562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이 3년 후 우리들이 가꾸고 지켜야 할 '문화재지킴이의 날'로 공식 선포되는 것이다.

 

당시, 실록을 지켜냈던 정읍의 선비 안의(安義 1529~1596)와 손홍록(孫弘祿 1537~1610)은 스승 일재(一齋) 이항(李恒 1499~1576)의 유지를 받들어 다른 제자들과 함께 국난의 상황에 이르러 내부와 외부에서 국난타계에 나섰고거의가 죽음을 면치 못했다.

 

때문에 이들의 역사는 시대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있었다.

 

내부에서 실록이 이안되던 시기 외부에서는 건재 김천일과 동래부사 송상현오봉 김제민 등의 일재(一齋) 이항(李恒)의 제자들이 전쟁의 최선봉에 나서서 왜세에 항전했고, 전쟁에 나설 수 없었던 노구의 안의와 손홍록은 실록과 어진의 피난에 힘썼다.

 

그 결과, 622일 '조선왕조실록'이 내장산 용굴암으로 1차 옮겨졌고, 71일 실록에 이어 조선의 태조 어진이 역시 내장산 용굴로 옮겨지며 비로소 모두가 안전해 질 수 있었다.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모든 국난의 상황에서 구국의 힘이 모아져 국난타계의 상황을 만들었던 것은 임금도, 세도 정치가들도 아니었다.

 

그것은 풀뿌리처럼 모진 세상을 헤쳐 나갔던 우리 문화재지킴이들과 같은 힘없는 민초들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흩어져 활동하는 10만 문화재지킴이들의 정신과 소명의식이 이렇듯 전국 각처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지켜내는 데 모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오는 22일 "문화재지킴이의 날" 선포식이 갖는 의미는 남다른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역할이 과연 무엇인지를 새삼 되짚어보게 한다.

ⓒ 브레이크뉴스 전북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도배방지 이미지


전주월드컵경기장 '초록빛 물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