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특별기고】파괴된 예루살렘 성전
한국기독교연합(KCA) 교육전문위원 이한규 목사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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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1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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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연합(KCA) 교육전문위원 이한규 목사.                                                                      © 김현종 기자

함락당한 예루살렘 성전

 

유대인들은 악전고투하며 로마군과 맞서 싸웠다.

 

로마 병사들은 방패로 몸을 보호하면서 손과 쇠지레를 이용해서 성벽의 기반을 파내기 시작하였고, 무척 애를 쓴 결과 성벽의 기초 석() 내 개를 빼내는 데 성공하였다.

 

그날 밤 기초석이 없어지고 공성 망치에 심하게 두들겨 맞았던 성벽 한 귀퉁이가 그만 갑자기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로마 군인들이 성 안으로 몰려들었다.

 

시가전이 벌어졌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살해했다.

 

마침내 치열한 공방 끝에 티투스는 성전 문들에 불을 지르라고 지시하였고 티투스는 성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지휘관 회의에서 의논한 후 그 장엄한 건물을 보존하기로 결정한 후 최후의 공격을 감행했다. 전군을 동원하여 성전을 완전 포위하고 공격하기로 하였다.

 

로마군은 성전 본당까지 진군하였다.

 

마침내 불타버린 성전

 

유대인들은 마치 신들린 사람들처럼 열심히 싸웠으며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와주실 것으로 믿고 여호와의 성소를 지켰다.

 

그러나 성전에 화염이 치솟자 유대인들은 고통에 찬 함성을 지르면서 불을 끄려고 달려갔다.

 

그렇게 목숨 걸고 지켜온 성전이 불에 타자 유대인들은 목숨 아까운 줄도 몰랐다.

 

티투스도 성전은 아꼈기 때문에 불을 끄기 위하여 급히 일어나 성전으로 달려갔다.

 

타이터스는 불길을 잡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미 성전 안뜰에 불이 붙었고 일부 로마 병사들은 불을 끄려고 사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유대인과 싸우고 있는 병사들은 우선 불부터 끄라는 지휘관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로마 병사들은 오히려 불을 지르라고 부추겼다.

 

무기도 없는 일반 백성들은 로마군에게 잡히는 대로 목이 잘렸고 성전 제단 주변에는 시체가 산처럼 쌓이게 되었다.

 

로마군들은 성전 내부가 온통 금으로 된 것을 보고 내부에 돈이 가득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병사들을 제지하러 달려온 티투스보다 먼저 온 병사 하나가 성전 문의 돌쩌귀가 있는 컴컴한 곳을 향해 불을 던졌고, 횃불이 떨어진 곳은 지성소 바로 옆에 있는 예배실이었다.

 

이 예배실은 오래된 목재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제사용 동물을 태우기 위한 가연성 물질 및 기름단지 등이 비치되어 있었으므로 활활 타오르던 화염은 춤을 추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성전이 세워진 산은 온통 불바다가 되었고, 사방은 온통 피바다를 이루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 파괴되고, 성전은 이제 돌 하나 돌 위에 남지 않고 폐허가 되기에 이른다.

 

이리하여 장엄하게 지어졌고 미석과 헌물로 꾸며졌던 예루살렘 성전(215)은 완전히 불타 버리고 말았다.

 

성전이 불에 탐으로 인해 금으로 입혔던 것이 녹아내려 벽과 바닥에 스며들었고, 로마 군인들은 그 금을 긁어내고자 성전의 파괴를 자행하였다.

 

제자 중 하나가 주님께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라고 말했을 때 주님은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216)라고 예언하셨다.

 

"날이 이르면"이란 그로부터 40년 후에 일어날 예루살렘의 역사적 멸망을 예언하신 말씀이었다.

 

예루살렘 성전 중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헤롯이 주전 20년에 개축한 제2성전 벽의 서쪽 부분이다.

 

이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부른다.

 

티투스 장군이 제2성전의 다른 부분을 모두 파괴하고 유독 이 벽만을 넘겨 놓은 이유는 후세 사람들에게 성전을 파괴시킬 수 있었던 로마 군대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기 한 것이었다.

 

로마에는 타이터스가 세운 개선문이 있는데 그 개선문 내부에는 예루살렘 점령 당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한 금촛대를 로마로 이송하고 있는 광경이 새겨져 있다.

 

그 후로 돌로 지어진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찾아야 할 진정한 성전은 성지 예루살렘의 성전이 아니라 성령을 모셔 들인 마음의 성전이요, 신약의 신령한 교회로서의 성전이다.

 

화려했던 예루살렘은 유령의 도시로 변했다.

 

통곡의 벽

 

로마는 출애굽을 통해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여 잘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그곳에서 내쫓았는데, 그것이 오늘날 팔레스타인 문제의 원인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묘사되어 있는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내 거주가 금지됐다.

 

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플에 수도를 정한 동로마 시대에는 일 년에 딱 하루, 즉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아브(Av. 여덟 번째 달 8)날에만 예루살렘 출입을 허용했다.

 

아브날이 되면, 유대인들은 파괴된 성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서쪽 기단 벽에 머리를 대고 통곡했다.

 

나라를 잃은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했다.

 

서쪽 벽은 유대인들의 통곡으로 늘 젖어있는 것 같았다.

 

점차 서쪽 벽은 통곡의 벽(Wailing Wall)으로 불리어갔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가장 가까운 이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풍습이 생겼다.

 

1948, 이스라엘이 독립한 이후에도 서쪽 벽은 요르단이 차지했기에 유대인들은 접근할 수가 없었다.

 

정해진 날에만 방문이 허가되었다.

 

19676일 전쟁으로 히브리인의 후예인 이스라엘은 서쪽 벽을 되찾았다.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을 공식적으로 되찾은 것은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약 1900년 만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서쪽 벽은 마귀가 세 차례나 예수님을 시험한 성전산의 서쪽 450m의 벽으로 헤롯에 의해서 세워진 성벽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다.

 

오늘날 통곡의 벽은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입구에서 오른쪽(남쪽)은 여자들 구역, 왼쪽(북쪽)은 남자들이 기도하는 구역이다.

 

남자 구역이 여자 구역보다 세배 이상 크다.

 

통곡의 벽에는 키파라는 꼬깔모자로 머리를 가린 유대인들이 토라(모세오경)를 읽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항상 볼 수 있다.

 

AD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당할 때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도록" 무너진 통곡의 벽 아래 부분은 당시 성전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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