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고】두로의 멸망에 대한 예언의 성취 (하)
한국기독교연합(KCA) 교육전문위원 이한규 목사
김현종 기자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18/11/04 [08:00]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지난 호에 이어

 

▲  한국기독교연합(KCA) 교육전문위원 이한규 목사.                                                                             © 김현종 기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두로 침공

 

에스겔 267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은 신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 두로를 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열왕의 왕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로 북방에서 말과 병거와 기병과 군대와 백성의 큰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두로를 치게 할 때에(7)."

 

이 예언이 있고 3년 후에 신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이 B.C 586년에 두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로는 완강하게 저항했다.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왕은 13년간이나 두로를 포위 공격한다.

 

공격 기간 동안 두로 사람들은 해안에서 반마일 정도까지 떨어진 섬을 요새화했고 점차 도시의 자원과 재산을 요새화된 섬으로 옮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 도시로 옮겼다.

 

두로의 새 섬은 크게 요새화되고 성벽이 항구를 보호하기 위해 해안까지 뻗어간 새 섬의 위치로 인해 계속 번성했다.

 

그러나 화려하게 떠올랐던 섬 위의 도시 두로는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이 함락당한 이듬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되고 유린당한다(B.C 585-573).

 

이와 같은 장기전은 결국 두로의 힘을 약화시킨다.

 

마침내 옛 도시는 바벨론 사람들에게 붕괴되었고 도시의 성벽을 완전히 파괴된다.

 

두로는 천혜의 요새에 위치한 도성이었다.

 

고대 Resilen의 수원(水源)은 어림잡아 하루 10,000,000 갤론의 물을 바다로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풍부하고 신선한 물은 두로가 13년 동안이나 느부갓네살에 대항하여 버틸 수 있도록 했다.

 

에스겔서는 두로의 멸망의 원인이 그의 교만함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그런즉 내가 외인 곧 열국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로 바다 가운데서 살륙을 당한 자의 죽음같이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찌라(에스겔 282~57~8)."

 

느부갓네살은 섬으로 되어 있는 두로를 BC 585년부터 573년까지 13년 간 포위하였으나 결코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했다.

 

느부갓네살에게 굴복한 두로는 협상을 체결하고 반 자치제의 왕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바벨론은 이 도시에 지방 행정 장관을 파견하여 바벨론에 정기적으로 적절하게 조공을 바치도록 하였다.

 

두로 본토는 당시에 재건되지 않았다.

 

그러나 섬에 위치한 도시는 페르시아 시대 이후까지 존속하였다.

 

알렉산더에 의한 두로의 함락

 

느부갓네살이 두로의 옛 도시를 파괴한지 241년 후에 알렉산더 대왕은 고대 세계를 정복하기 시작했다.

 

BC 333년 이수스 전투에서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군대를 격파하자 시돈과 페니키아의 다른 도시들은 즉각 항복한다.

 

시돈은 싸우기도 전에 항복해 왔다.

 

B.C. 332년 알렉산더가 페르시아를 격퇴시키고 지중해 연안 도시들을 정복해 나가고 있을 때 페르시아에 대해 적대감을 갖고 있었던 두로 사람들은 새로운 지배자 알렉산더를 환영했지만, 헬라인의 지배자알렉산더가 섬 도시의 멜카르트의 성지로 들어오는 것은 거부하면서 독립의 의지를 표명했다.

 

두로는 섬이었기 때문에 공격하는 쪽이 불리했다.

 

알렉산더는 도시를 정복하기 위해 첫 번째 시도를 했으나 인근 항구로부터 모인 배들이 바다로부터 습격해 왔기 때문에 실패했다.

 

그래서 알렉산더는 그의 기술장관 디아데스(Diades)와 함께 대담한 둑길 작전을 계획하고 옛 도시 두로에서 목재와 암석들을 가져다가 육지에서 섬까지 길이 800m60m의 방축을 쌓고 키프로스섬과 페니키아 전역에서 기술자들을 모아 성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제작하게 하여 일부는 방파제 위에, 일부는 기마부대의 수송선 위에 배치시켜 놓는다.

 

두로 사람들은 적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 온갖 전략을 다 동원하여 악착같이 방어했다.

 

그들은 불화살을 쏘아 적의 선박을 불사르기도 하고성벽 위에서 거대한 돌덩어리를 굴려 떨어뜨리기도 했다.

 

심지어는 닻줄을 자르는 임무를 띤 잠수부를 비밀리 침투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비블로스와 아라도스 같은 페니키아의 다른 도시들과 로도스섬과 키프로스 섬에서 보유하고 있던 함대를 알렉산더에게 보내 왔다.

 

두로 사람들은 성 안에 고립된다.

 

두로 사람들은 계속되는 공세에도 오랫동안 버티었지만 마침내 둑길이 다 만들어지고 알렉산더 대왕은 친히 군대를 이끌고 성벽을 넘어 진군하여 도성을 점령한다.

 

역사가 Joseph Free는 "네 돌들과 네 재목과 네 흙을 다 물 가운데 던질 것이라’(12)는 에스겔의 예언은 알렉산더의 기술자들이 두로의 부서진 파편들을 물 가운데로 던져서 방파제를 만든 사건으로 성취되었다"고 말한다.

 

알렉산더는 부왕(父王) 필리포스가 개발한 공성무기와 투석기를 사용하여 요새 도시의 두터운 성벽을 마침내 허물어뜨릴 수 있었는데, 이로써 에스겔 2612절의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된다.

 

이 때 두로인 8,000명이 살육을 당했는데 2,000의 지도자급 인사는 교수형에 처해지고 무려 3만명이 노예로 팔려갔다.

 

두로의 함락은 포위 공성전에 난공불락이었던 성채 도시 국가의 조종(弔鐘)을 울렸다.

 

고대 옛 두로는 도시의 위치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훼파됐다.

 

그 후 200년도 채 못 지나서 한 그룹의 고고학자들은 바위의 꼭대기 위에서 어부들이 그물 말리는 것을 보았다.

 

여러 해 동안 비에 씻겨진 후 말간 반석이 드러났으며어부들이 그것을 그들의 그물을 말리는 곳으로 사용했다.

 

역사가 Philip Myers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알렉산더 대제의 공격은 두로가 멸망되기까지 계속되었다. 이 공격 후 폐허가 된 두로는 조금 그 상태를 회복할 수 있었으나 다시는 그 전과 같은 나라로 재건되지는 못했다. 한 때 크게 번창하였던 그 땅은 이제 바위의 표면처럼 썰렁하게 되었고지금과 같이 어부들이 그물을 펼쳐서 말리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옛 두로의 해안 지역은 에스겔의 예언대로 먼지까지 깨끗이 쓸리어 말간 반석과 바다 가운데 그물 치는 곳이 되었고(264~512~14) 마을 어부들이 그물을 널어 말리는 곳이 되고 말았다.

 

그 도시는 재차 복구되었지만 멸망 이전의 상태로는 결코 돌아가지 않았다.

 

그 이후 A.D. 1291년에 이르러서는 사라센에 의하여 거의 완전하게 멸망당한다.

 

이제는 에스겔 시대에 볼 수 있었던 그 화려한 나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항해자의 거한 유명한 성이여 너와 너의 거민이 바다 가운데 있어 견고하였도다. 해변의 모든 거민을 두렵게 하였더니 어찌 그리 멸망하였는고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로 거민이 없는 성과 같이 황무한 성이 되게 하고 깊은 바다로 네 위에 오르게 하며 큰 물로 너를 덮게 할 때에."

 

알렉산더가 두로를 공략, 멸망시킴으로써 겔26장의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에스겔의 예언대로 먼지까지 깨끗이 쓸리어 말간 반석과 바다 가운데 그물 치는 곳이 되었다.(264~512~14)

 

"바다가 그 파도로 흉용케 함같이" 멸망한 두로

 

두로가 난공불락처럼 보일 때 성경은 그들의 교만과 죄악으로 인해 "바다가 그 파도로 흉용케 함같이"파멸될 것을 예언했다.

 

요약하면 이 예언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로 바벨론 군대가 주전 587년부터 시작하여 십삼 년 동안 두로를 포위했으며, 이 때 이 성은 완전히 훼파되었다.

 

새로운 두로 성이 원래의 자리에서 1 마일 떨어진 한 섬에 건축되었다.

 

두 번째로, 바벨론 포위 후 240년이 지나서 알렉산더 군대가 옛 두로 성의 폐허로부터 돌과 재목과 흙을 가져다가 물 가운데 던져서 그 섬으로 가는 길을 건축하여 그 새 두로성을 공격했다.

 

여러 해 동안 비에 씻겨진 이후 말간 반석이 드러났으며 어부들이 그것을 그들의 그물을 말리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알렉산더의 뒤를 이어 B.C. 64, 새로운 정복자가 된 로마인들은 두로를 그들의 제국에 편입시키고 이곳에, 수로와 개선문거대한 히포드럼(전차 경기장) 등 이 도시의 중요한 조형물들을 건설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먼저 섬 도시에 이르는 길을 닦았다.

 

황제를 위한 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구세주(救世主)를 보내시기 전당시 지중해 세계를 로마 제국으로 통일케 하시어 국경의 장벽을 허시고잘 닦여진 길을 따라 당시 보편적 공용어가 된 헬라어로 종교적으로 갈급해 있는 여러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할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 브레이크뉴스 전북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도배방지 이미지


전주월드컵경기장 '초록빛 물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