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특별기고】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 안장 소감!
이윤영 = 동학혁명연구소장
기사입력: 2019/05/23 [19:55]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전북판
신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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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영 = 동학혁명연구소장.                     © 신성철 기자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했던가!

 

엊그제까지 봄의 전령사인 매화(梅花)가 곱고도 아담하게 피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벌써 넝쿨 장미꽃들이 아파트 울타리와 담벼락을 붉게 물들이며 오고가는 시선들을 사로잡는다.

 

이렇듯 피고 지는 꽃들을 생각하면서 지난 세월이 성큼 가슴으로 다가온다.

 

기쁜 일도 있었고 슬픈 일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잠자리를 뒤척이다 뜬 눈으로 날을 새는 일도 있었다.

 

지금 필자가 글을 쓰고자 하는 내용도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이고 어쩌면 세계인들도 꼭 알아야 하는 곡절의 역사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우리는 이 이야기를 가슴에 새겨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 21일 오후 4시께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遺骨) 입관식이 전북 전주역사박물관 지하 2층 수장고에서 엄숙하게 진행됐다.

 

필자가 집도(집례)을 맡았고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종민 이사장이 법적인 상주자격으로 10여명의 관계자들과 함께 거행했다.

 

입관식은 일본에서 송환될 때 제작된 관(머리부위 유골관)에서 전주 완산칠봉 투구봉에 이장 안치될 새로운 오동나무 관으로 옮기는 의식을 동학의절에 준해 치른 것이다.

 

또한, 오는 6월 1일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주최로 ▲ 전주시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 동학농민혁명유족회 등의 후원으로 안장사업의 계획이 최종 마무리된다.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넋을 기리고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조성된 ‘동학농민혁명 추모관’에서 1996년 일본에서 봉환해 온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을 영구안치하고 다채로운 추모행사를 개최하게 됐다.

 

동학농민혁명 125주년을 맞는 올해 안장사업의 장기간(봉환 23년)의 결과이자 부끄럽기 짝이 없는 후손된 도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 안장사업은 전국 관련단체와 관계기관 등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전주입성 125주년 기념식을 시작으로 문화공연 및 학술행사 등의 추모행사가 오는 31일부터 6월 1일까지 규모 있게 진행된다.

 

안장 추모행사에서 필자가 발인식과 안장식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집도(집례)를 하게 돼 실로 마음이 무거운 것은 물론 일제의 야만적인 과거사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일본 북해도 홋카이도대학에 방치된 유골 발견 경위는, 1995년 7월 25일 훗카이도대학 문학부 표본고(標本庫)에 쌓여있던 여섯 개의 종이상자 가운데 한 상자에 “동학당 수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고 문서가 첨부돼 있었다.

 

이 문서에는 "메이지 39년(1906년) 9월 20일 진도에서 효수된 '동학 수괴자'의 해골, 시찰 중 수집"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러한 사실이 1995년 8월 3일자 마이니찌 등 일본의 언론에 보도됐고 한승헌(前 감사원장 = 당시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변호사가 그 기사를 접하게 됐다.

 

한승헌 변호사는 기념사업회 이사장의 명의로 홋카이도대학 문학부장 준키치(今西順吉) 교수에게 한국인 유골의 봉환을 요청하는 것부터 시작됐다.

 

이후 국내 봉환과 유골안장 과정에 대해 그동안 언론을 통해 자세하게 보도된 만큼,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문제는, 현재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임시로 안치중인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을 전주 완산전투지인 투구봉에 추모시설인 녹두관을 새로 건립해 안장할 준비가 마무리된 상황에서 더 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오는 6월 1일로 예정된 최종 안장에 대한 진도군 측에서 최근 법적인 문제로 접근하게 된 부분을 놓고 살펴보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심정임을 사실상 고백한다.

 

그동안,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해조사위원회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 DNA 감식을 의뢰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이 유골은 몽골로이드 특성을 보이는 30~40대 한국인 남자로 진도출신 동학군 지도자 ‘박중진’ 등으로 추정돼 후손의 유전자를 감식한 결과, 불일치로 나와 더욱 세밀하게 감식했지만 두골의 당사자와 혈통적 관계가 멀어 중단됐다.

 

결국, 이러한 과정에 있어 진도에서 유골을 발견해 일본으로 옮겨 인종연구에 사용되다가 방치된 유골의 직접 후손은 찾지 못했고 사실 어디 출신인가도 모르는 상태다.

 

동학농민군의 최후 전투지의 한곳인 장흥 등에서 일본군과 관군에게 바다에 몰리는 즉, 수몰작전에 희생되지 않은 동학농민군은 바다 건너 인근의 섬으로 도피했으나 결국 일본군의 최종 섬멸작전에 희생된 분들이 많았다.

 

그 때 희생된 동학농민군들은 현재 전남지역과 멀리 김제 금구와 원평 지역 출신 등이 광범위하게 참가했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해 일본에서 봉환된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은 진도출신 뿐만 아니라 어느 지역 출신인가를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특히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2001년과 2005년 두 차례나 진도군에 유골을 안장할 것을 권유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미온적 태도와 예산확보 등 문제로 무산됐다.

 

또한, 김제시와 정읍시 등 여러 곳으로 안장을 시도해보았으나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가 지역 출신으로 볼 수 없어 묘지를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 마련하기가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려 성사되지 못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기념사업회와 전주시가 2015년 전주에 안장하기로 합의해 예산까지 확보‧편성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그런데, 그 후 진도측에서 유골을 진도로 되돌려 보내라는 강력한 주장을 펴고 있다.

 

현재로서는 참으로 남감한 상황이나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유골에 대한 법적인 연고자 자문을 2015년 '호산공동법률사무소'에 의뢰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6호의 규정에 따르면 "'연고자'란 배우자‧자녀‧부모‧자녀 외의 직계비속‧부모 외의 직계존속‧형제‧자매‧사망하기 전에 치료 및 보호 또는 관리하고 있었던 행정기관 또는 치료‧보호기관의 장으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또는 이와 같이) 해당하지 아니하는 자로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로 규정돼 있다.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의 법적인 연고자의 결론은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로 자문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전주 완산전투지에 무명 동학농민군 지도자 안장은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다.

 

이미 안장사업에 대한 최종 결정과 일정까지 정해진 상황에 다시 강조하는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희생당한 이름 없는 무명 의병들이 무려 30만명에 이른다.

 

그 수십만의 무명 동학농민군을 상징하는 분이 이번에 안장할 무명지도자다.

 

우리 모두 삼가 옷깃을 여미고 순국선열을 추모하면서 그분들이 남기신 뜻을 계승해 "보국안민(報國安民)과 광제창생(廣濟蒼生)은 물론 남북통일과 세계평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하자"는 제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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