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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무성서원… 세계문화유산 등재
'비움의 담백함' 군더더기 없는 반듯한 선비 풍모
기사입력: 2019/07/08 [13:26]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전북판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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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은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에 자리한 다른 서원과 달리 마을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무성서원 강당 전경)               / 사진제공 = 정읍시청     © 김현종 기자

 

▲  지난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 참석한 유진섭(왼쪽에서 다섯 번째) 전북 정읍시장이 등재가 결정되자 관계자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현종 기자

 

 

 

전북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 = 사적 제166호)을 비롯 '한국의 서원' 9곳이 지난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 유네스코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결정한 순간,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정읍의 자랑입니다!' 등 시내 곳곳에 무성서원 등재를 환영하는 플래카드 게첨 및 무성서원 현지에서는 농악단과 지역 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1시간 넘게 축하공연도 펼쳤다.

 

정읍시청 행정망 전화 연결음도 등재를 환영하는 문구로 전환했고 전북은행과 농협 역시 ATM기에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정읍의 자랑입니다!'라는 문구를 표출해 줄 것"을 협조 요청했다.

 

또, 각 마을 단위 일제방송을 통해 "무성서원이 정읍을 넘어 전 세계 인류가 공동으로 지키고 전승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며 "무성서원이 세계에 널리 알려 질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정읍 무성서원(武城書院)은 주민 자치규약인 향약의 거점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향약인 고현동향약을 시행하는 등 을사늑약 체결로 일본의 침략이 노골화되자 이에 항거해 면암 최익현이 1906년 의병을 창의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지방관의 향촌민에 대한 학문 부흥을 목적으로 마을 가운데 세워진 무성서원(武城書院)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지방관의 향촌민에 대한 학문 부흥을 목적으로 마을 가운데 세워진 무성서원(武城書院) 현가루 전경.     © 김현종 기자

 

▲  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터를 잡고 있는 무성서원(사적 제166호)은 우아한 건축미가 인상적이며 군더더기 하나 없는 반듯한 선비의 풍모도 묻어난다.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 김현종 기자


 

 

한국의 서원은 2015년 세계유산 도전에 나섰으나 이듬해 이코모스가 서원 주변 경관이 문화재 구역에 포함되지 않았고 연속유산 연계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반려'(Defer) 판정을 받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서원은 공립학교인 향교(鄕校)와 달리 지방 지식인이 설립한 사립학교로, 성리학 가치에 부합하는 지식인을 양성하고 지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를 사표(師表)로 삼아 배향했다.

 

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터를 잡고 있는 무성서원(사적 제166호)은 우아한 건축미가 인상적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반듯한 선비의 풍모도 묻어난다.

 

게다가 녹음까지 어우러진 7월의 풍경은 아름답고 분위기는 한껏 여유롭다.

 

출입문을 지나면 ▲ 유식공간인 현가루 ▲ 학습공간인 명륜당 ▲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등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의 짙푸른 잎들이 운치를 더해준다.

 

유서 깊은 문화유산의 고장 정읍의 대표적인 문화자원인 무성서원이 세계 인류가 지켜나가야 할 문화유산으로 거듭났다.

 

유네스코는 6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WHC)는 대한민국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을 포함한 9개 서원을 엮어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서원은 ▲ 정읍 무성서원 ▲ 영주 소수서원 ▲ 경주 옥산서원 ▲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 달성 도동서원 ▲ 함양 남계서원 ▲ 장성 필암서원 ▲ 논산 돈암서원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하는 한국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라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따라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세계유산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 1천여 년 시간을 만나다! = 무성서원은 1615년 서원으로 출발했다.

 

태산서원으로 불리다가 숙종 22년인 1696년 사액(賜額)을 받아 무성서원으로 개칭됐다.

 

고종 5년(1868년) 흥선대원군의 대대적인 서원 철폐령 속에 살아남았던 전라북도 유일의 서원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47개의 서원만 남았는데 전라도에서는 무성서원과 장성 필암서원, 광주 포충사만 헐리지 않았다.

 

무성서원 사당 한가운데에는 고운 최치원(857년 ~ ?)의 위패와 초상이 모셔져 있는데 그는 신라 말 태산(지금의 태인‧칠보 일대)의 태수를 지냈다.

 

무성서원은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생사당(백성들이 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찬양하기 위하여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부터 제사지내는 사당)인 태산사가 뿌리다.

 

고운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무성서원은 1천여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고운이 태산군의 태수로 부임한 886년경부터 계산하면 1,100여년의 역사다.

 

무성서원은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에 자리한 다른 서원과 달리 마을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신분 계급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학문의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했고, 지역민 결집의 중심이었다.

 

전문가들은 "향촌민과 함께 하면서 지역문화를 선도하며 지식인들이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거점 이었다"고 평가했다.

 

대표적 인물이 조선 초의 문인 불우헌 정극인(1401~1481, 경기도 광주 출생)이다.

 

불우헌은 1436년 벼슬에서 물러나 처향(妻鄕)인 태인(그의 묘소와 유적이 현재 칠보면에 소재하고 있으나 당대의 지명은 태산(泰山)과 인의(仁義)가 합쳐진(1409년 ‘태인현’이었다)에 내려와 교육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가사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은 자연 속에 묻혀 교육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면서 자연 속에서의 삶을 노래했다.

 

그는 성리학적 질서를 담은 지역자치 규약인 고현동향약(1475 = 보물 1181호)을 통해 미풍양속을 권장하고 이웃과의 화목을 권장했다.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일제 강점기인 1906년에는 을사늑약에 항거하는 병오창의가 일어났다.

 

면암 최익현과 둔헌 임병찬이 주도한 이 사건은 호남 최초의 항일 의병운동으로 평가된다.

 

특히, 전북지역 중심서원이자 정신사적 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다면, 경기 포천 사람인 최익현이 정읍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킨 배경은 무얼까?

 

동양학으로 유명한 A교수는 "그만큼 이 동네(무성서원이 있는 원촌마을)에 선비정신이 켜켜이 축적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기념하는 병오창의 기념비가 사원 안에 있다.

 

정기적으로 관련 행사도 열리고 있다.

 

◈ 교육에서부터 개방과 소통까지… 무성서원을 찾은 이들은 "폐쇄적이지 않고 건축물이 간결하며 모든 건축물의 높이가 동일한 것에서 민(民)을 향한 따뜻한 배려심이 느껴진다"고 입을 모은다.

 

서원 건축물들도 마을을 항해 열린 공간으로 구성돼 서원 영역 전체를 관통한다.

 

강당을 보면 가운데 마루 3칸이 벽체가 없이 툭 틔어있어 내삼문의 태극문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흥재 무성서원 이흥재 부원장은 "'비움의 담백함'이라는 우리 아름다움의 건축미를 느낄 수 있는 절묘한 조형이다. 무성서원에서 공부하던 군더더기 하나 없이 반듯한 선비의 모습 그대로"라고 설명했다.

 

무성서원은 배향 인물도 많다.

 

고운과 불우헌‧원 인근에서 활동하던 영천 신잠(1491~1554)‧눌암 송세림(1479~1519)‧묵재 정언충(1491~1557)‧성재 김약묵(1500~1558)‧명천 김권(1549~1622) 모두 일곱이다.

 

◈ 최치원의 풍류정신, 국가브랜드로 우뚝! = 고운의 숨결이 고스란히 품고 있는 무성서원은 정읍의 정신적‧문화사적 큰 자산이다.

 

이를 반영하듯 정읍시는 그동안 무성서원을 중심으로 한 무성서원 선비문화수련원 건립을 추진해왔다.

 

호남 선비정신 수련과 풍류 문화를 배우고 계승‧발전시켜 나갈 거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사업이다.

 

선비수련원은 무성서원 인근 42,492㎡ 부지에 건립된다.

 

선비문화수련과 체험 및 교육을 통해 윤리위식을 높이는 등 인성함양에 도움을 주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다양한 홍보 채널 확보와 함께 무성서원을 활용한 사업과 공연‧강좌‧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오는 11월까지 최치원과 정극인 등 무성서원의 배향 인물로 알아보는 풍류와 도에 대한 강좌와 나라국악관현악단‧전라정가진흥회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또, 무성서원 본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강학당을 운영하고 서원과 주요 역사 관련 장소를 답사하면서 예절과 다례‧사자소학 등을 배우고 체험하는 서원스테이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이 밖에도, 유네스코 등재 선포식 등의 이벤트와 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통해 무성서원의 가치를 공유토록 함은 물론 지역민들의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도 높인다는 복안이다.

 

또한, 무성서원의 가치를 더 널리 알리는 것은 물론 온전히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보존 관리대책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다.

 

유진섭 정읍시장은 "등재 결정은 정읍시민 뿐만 아니라 200만 도민과 대한민국의 쾌거로 등재를 위해 노력한 관계자 모두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계기로 무성서원과 지역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생태‧예술‧유산 등 지역자원을 연계해 무성서원의 가치를 한층 더 높이는 동시에 지역문화관광 산업에도 활력을 불어 넣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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