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칼럼】조선국왕의 경호실, 선전관청의 직제
한국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 = 안병일
기사입력: 2020/09/16 [09:02]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전북판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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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병일 = 명지대학교 법무행정학과 객원교수 / 행정학박사.                                                               © 김현종 기자

본 칼럼은 조선시대 국왕의 경호실인 선전관청의 직제를 고찰해봄으로써 현대의 공무원제도와의 다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선전관은 무반 경관직(京官職)으로서 정3품에서 종9품에 이르는 다양한 품계를 두고 있었다.

 

선전관은 세조 3년(1458년) 3월에 설치되어 정원은 15명으로 되어 있다.

 

그 후 세조 8년(1463년)에는 선전관 5명을 감하여 10명으로 줄인다고 하였으나 정원 15명에 대한 인원은 5년 후인 세조 13년에도 "정난종ㆍ한치의 등 15명을 선전관으로 임명한 것"을 보면 인원을 감축하지 않고 그대로 시행되고 있었다.

 

조선 전기 선전관의 인원과 품계를 살펴보면 '경국대전'에 "선전관은 8명으로 품계는 정3품ㆍ종3품ㆍ종4품ㆍ종5품ㆍ종6품ㆍ종7품ㆍ종8품ㆍ종9품에 각 1명씩 총 8명을 두었다."(표 1> 참조).

 

조선 전기의 선전관 증감을 보면, 세조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집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위ㆍ궁중숙위에 큰 관심을 두어 15명의 선전관을 설치하였으나 왕권이 비교적 안정된 성종ㆍ중종 시기에는 8명의 선전관을 두고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에는 임진왜란 이후에 정치 및 군사조직 등에서 취약성을 드러내고(정시채) 조정에 대한 불신 등으로 인한 왕권의 약화 등으로 선전관을 38명으로 대폭 증원하였으며 광해군 또한 힘겹게 왕위에 오르고 계축옥사 등으로 인한 견고한 궁중숙위가 필요함으로 48명이라는 많은 선전관을 두고 운영하였다.

 

조선 후기를 살펴보면 '속대전'의 선전관청 직제는 "선전관 21명으로 품계는 정3품 1명ㆍ종6품 3명ㆍ종9품" 등 17명을 두었다.”

 

또한 '대전통편'엔 "선전관이 24명"으로 되어 있다.

 

<표 2>를 보면, 영조 시기에는 21명(체아록자)의 선전관 전원이 실무를 담당했으나 정조 시기에는 24명의 선전관 중 8명이, 고종 시기에는 25명의 선전관 중 8명만이 실직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는 선전관이 조선후기로 접어들면서 지벌(地閥)을 자랑하는 청환(淸宦)의 자리가 되었다고 보여 진다(최남선).

 

시대에 따른 선전관의 증감을 보면 ▲ 세조(15명) ▲ 선조(38명) ▲ 광해군(48명) 등 왕권의 존립이 불안해 전제권을 강화하려고 노력했던 시기로 그 수의 증가를 볼 수 있다.

 

반면에 ▲ 성종(8명) ▲ 중종(8명) 같이 시대적으로 비교적 안정됐거나 관료권을 비교적 존중했던 시기에는 질적인 향상문제가 크게 대두된 것으로 선전관청 자체가 국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던 최근시 무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시대별 정원에 대한 변천과정을 중요시 다룬 것은 시대적으로 왕권의 위상과, 운영상의 시기별 양상과 변화상을 파악하는데 중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표 4 참조).

 

이는 강력한 집권책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고 왕권 강화를 도모하면서 한편으로는 신장된 신권(臣權)을 견제하기 위한 이중효과를 도모하는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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