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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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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2/2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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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의미의 달력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시간이란 지역마다 다르고 다양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맞는 독자적인 생활주기에 따라 제례와 의식을 행하며 각각 다른 색깔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누렸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던 계절에 대한 감각 및 조수간만의 리듬과 초목의 개화 또는 철새의 도래와 규칙적인 홍수 등 자연의 운행을 정밀하게 관찰함으로써 날과 달의 경과를 이해한 것이다.
 
이 같은, 자연력(自然曆)에 대한 지식은 인간의 오랜 경험에 입각해 만들어져 자신들의 종족에게 전승, 계승됐다.
 
벵골만에 위치한 앤다만 제도의 숲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향기 나는 달력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 달력은 꽃과 나무의 향기에 따라 시간이 표시돼 있다.
 
, 멜라네시아의 뉴브리튼섬에서는 어떤 특정 식물의 꽃이 피거나 잎이 지는 것을 지표로 1년이 12기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와 같은 자연 현상의 출현 날짜는 다소 불확정적이기는 하지만 달력으로 큰 불편은 없었던 것 같다.
 
이처럼, 문명 이전의 달력은 자연과의 합일 및 대 인간적 향기를 느끼게 하는 것으로 오히려 정감이 간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달력의 근간은 1년을 365일로 정하고 4년마다 하루를 더한 이집트력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인 6~7세기께 중국으로부터 역법을 들여와 이웃 일본에까지 전한 것으로 문헌에 기록돼 있다.
 
우리가 태양력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95년 고종의 칙령에 따라 그해 음력 1117일을 189611일로 변경하면서부터 요일 개념이 등장했다.
 
하지만, 한동안 음력과 양력이 혼재돼 사용되는 과도기였고 오늘날의 아라비아 숫자 달력 형태가 등장한 것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황의 기원을 따진 달력 등 나라 잃은 설움이 달력에도 드러났으며 해방 이후 달력은 국가 정책의 홍보 수단으로 사용되다, 이후 상업화되면서 한때 홍수를 누렸지만 오늘날 디지털 달력이 등장하면서 해를 거듭 할수록 귀한 몸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불황을 겪는 기업들이 비용 절감 차원에서 달력 제작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제작을 하지 않으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더 더욱, 기업들의 달력 제작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것은 달력이 이제 홍보 수단으로서의 제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아닐까?
 
연말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달력과 연하장도 이제 스마트폰 등 첨단기기로 일정을 관리하는데다, 경기 침체까지 맞물리면서 사라져가는 것들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어 씁쓸할 따름이다.
 
물론, 새해 달력 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유난히 올해가 더욱 심해 지역 영세 인쇄업체의 "달력 연말 특수"마저 이제 옛말이 되어 버려 언젠가는 가정에 남는 달력을 모아 나눠주는 봉사활동 등이 봇물처럼 훈훈한 미담으로 기록돼 귓전을 자극한다면 어이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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