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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독립운동 현장을 찾아 (5)
연해주 고려인들의 삶, 희망, 그리고 희원(希願)
기사입력: 2015/05/22 [03:21]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전북판
이용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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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술문화기행단이 찾은 러시아 정교회 입구 벽화.      ©이용찬 기자

 

전북대학교 학술문화기행단의 러시아 마지막 일정은 러시아 정교회 내부 탐방과 연해주에서 최초에 한인들이 모여 살았다고 추정되는 ‘신한촌’을 둘러보고 연해주 지역에서 발견된 발해의 유물들이 전시된 블라디보스토크 향토사박물관을 견학한 후 블라디보스토크 역사 앞 레닌광장을 거쳐 항구로 이동 DBS 크루주 페리에 승선, 한국으로 향하는 코스로 진행됐다.


블라디보스토크 셋째 날 여정은 하루 전보다 한 시간 늦은 러시아 현지시각 08시부터 시작됐다.

 

이곳에서 기자는 잠시 손니치문화센터 이윤상, 정복희 원장 부부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이윤상 원장은 "연해주의 역사는 늘 우리 민족과 함께 해왔지만 연해주 고려인들 대부분이 러시아로 귀화한 상태였고, 연해주의 항일운동들 또한 종내에는 사회당 형태의 운동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연해주의 역사는 묻히고 단절된 채 흘러왔다"며  "참여정부 시기부터 연구가 시작되긴 했지만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전북대 학술문화기행단의 셋째 날 첫 여정은 러시아 정교회의 내부를 둘러보는 코스였다.

 

마침 러시아 정교회 내부에서는 엄숙한 분위기속에 정교회 신부가 아이에게 세례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교회는 한때 반서구적 입장을 채택했다.

 

하지만, 현재는 로마 가톨릭교회와도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하긴 했으나 유아세례를 직접 목격하기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할 만큼 매우 드문 일 이었다.

 

러시아 정교회의 모습은 금빛을 발하는 외관 지붕뿐만 아니라 내부 또한 다양한 소품과 장식물들로 화려하게 채색돼 있었다.

 

▲  화려하게 장식된 러시아 정교회 내부.     ©이용찬 기자

 
전북대학교 학술기행단이 두 번째로 찾은 코스는 최초의 ‘신한촌’ 입구로 거론되는 지역으로, 현재는 학계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지만 1999년 당시 해외한민족연구소가 조선과 연해주, 그리고 그 외 지역들의 항일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했다는 개의 화강암 돌기둥이 세워진 ‘신한촌 항일운동 기념탑’으로 이동했다.

 

▲ ‘신한촌 항일운동 기념탑’을 지키고 있는 고려인 리바체 슬라브씨가 포즈를 기념탑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용찬 기자

이곳의 항일운동 기념탑은 한동안 러시아인들의 우월주의가 불러온 고려인에 대한 열성국민이라는 의식과 러시아 정부의 외국인에 대한 패쇄적이고 배타적인 정책 영향으로 온갖 낙서와 고려인을 폄훼하는 유성 페인트 칠이 난무했고, 주변은 온통 쓰레기와 인분 구르마가 놓여 있었다.


이에 따라, ‘신한촌 항일운동 기념탑’ 주변을 지키기 위해 고려인들이 나서기 시작했고, 철재 담장을 두르고 윤번으로 교대하며 이곳의 안녕을 지켰고, 최근 15년 전부터는 고려인 리바체 슬라브씨가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리바체 슬라브씨도 한동안 건강이 악화돼 4~5년 전까지만 해도 거동이 힘들어 한때는 이곳을 찾지 못했지만 최근 건강이 회복되면서 기념탑을 지키고 있다.
 
비록 노구의 몸으로 몸은 불편해 보였지만 형형한 눈빛으로 학술문화기행단을 반기는 그를 통해 불꽃같은 고려인의 기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신한촌 항일운동 기념탑’을 방문한 전북대 학술문화기행단 김익두 단장은 리바체 슬라브씨에게 소정의 관리 비용을 건네는 세심한 면모를 드러냈다.

 

리바체 슬라브씨는 2007년 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에 초청돼 민주평화 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된바 있다.

 

그를 통해 살아 있는 고려인의 애환의 삶과 불꽃같은 고려인의 기상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듣고 싶었지만 뇌졸중 투병이후 언어 소통이 되지 않아 끝내 현장증언을 듣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  전북대 학술문화기행단 김익두 단장이 리바체 슬라브씨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용찬 기자

 
학술문화기행단 일행이 세 번째로 찾은 곳은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위치한 향토박물관이었다.

 

향토사박물관 관람에 앞서 가이드는 "블라디보스토크 향토박물관에는 옛 고구려의 민속양식을 그대로 재현한 발해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라는 것이었지만 직면한 향토박물관의 모습은 발해의 유물보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재현된 박물관이란 느낌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고구려의 후신인 발해를 러시아에선 '보하이'라고 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울러, 중국의 동북공정이 그렇듯 이곳에선 발해를 한국사의 일부로 보지 않고 러시아의 여러 민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향토박물관에는 소규모의 발해유적 전시물에 비해 러시아 혁명과 러·일 전쟁, 세계 제1차 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유물들을 비롯 러시아 대륙 곳곳의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을 뿐이다.


이날 학술문화기행단이 마지막 코스로 찾은 곳은 블라디보스토크 역사 앞에 위치해 있는 레닌광장의 레닌 동상과 블라디보스토크 역사를 둘러보는 코스였다.

 

▲  옛 사찰 터에서 발견된 발해유적.    ©이용찬 기자

 
기존 러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일부 국가들 사이에서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1870~1924)의 동상이 철거되기도 했지만 블라디보스토크 역사 앞에서 서쪽을 향해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는 레닌의 동상은 아직도 건재한 위풍을 과시하고 있었다.

 

▲ 블라디보스토크 역사 앞에 위치한 레닌 광장의 레닌 동상.    ©이용찬 기자


기자와 학술단 일행은 레닌의 동상 앞을 무심히 지나치는 러시아인들을 상대로 레닌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었지만 끝내 후인들의 평가는 듣지 못했다.

 

다만, 마주한 블라디보스토크 역사 앞에서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은 비슷한 또래의 토막 영어를 구사하는 러시아 학생들을 만나 유창한 회화 실력을 자랑하듯 대화를 하는 동안 함박 웃음을 함께 웃으며 세계화를 향해 발돋움하는 전북대학교의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로 이어졌다.

 

▲  러시아 여학생이 전북대학교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용찬 기자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짧은 사흘 동안의 여정은 그렇게 갈무리됐다.

 

일행은 이후 승선시간에 쫓겨 귀국행 크루즈 페리에 서둘러 탑승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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