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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 '11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민족의식 고취시킨 이한응 선생 ⋅ 이장원 해병대 중위
기사입력: 2016/11/01 [15:39]  최종편집: ⓒ 브레이크뉴스 전북판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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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가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2016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독립운동가 이한응(왼쪽) 선생과 6.25 전쟁 호국영웅에 이장원(오른쪽) 해병대 중위를 선정했다.   / 사진제공 = 전북서부보훈지청     © 김현종 기자


 

 

 

전북서부보훈지청은 "국가보훈처가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201611월의 독립운동가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독립운동가 이한응 선생과 6.25 전쟁 호국영웅에 이장원 해병대 중위를 선정했다"1일 밝혔다.

 

이한응 선생은 1874년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해 1889년 서울 육영공원에서 근대적 학문을 수학했으며 1899년 관립 영어 학교 교관으로 임명된 후 19013월 런던주재 대한제국공사관 참서관으로 임명된다.

 

신임 공사가 부임하지 않아 1904년 초부터 이한응이 대리공사로서 업무를 수행한다.

 

대리공사의 직임을 맡게 된 이한응 선생은 1904년 초부터 러일 전쟁을 예견하고 한반도의 평화가 유럽의 세력균형과 연관된다는 창의적인 견해를 영국 외무부에 전달했다.

 

이후 영국 정부를 상대로 한국의 영토보존과 독립을 보장해 줄 것을 요청하는 '한반도 중립화 방안'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며 구국외교활동을 전개했다.

 

대한제국의 외교관으로서 국권이 상실되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한 이한응 선생은 1905512일 자신의 침실에서 목을 매어 자결 순국했다.

 

이한응 선생의 유해는 고종황제의 특별지시와 런던주재 한국명예총영사 모건의 노력으로 그해 7월 고국에 반장돼 고향인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덕성리 금현에 안장돼 있으며 정부는 고인의 활동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6.25 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이장원 해병대 중위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4월 해병사관후보생 5기로 입대해 그해 9월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후 적에 대한 후방교란과 해안봉쇄작전을 수행하는 해군 엄호의 임무를 띠고 해병 독립 42중대 소속으로 195111월 함경남도 영흥만 인근에 있는 황토도(黃土島) 주둔 해병대 파견소대장으로 이곳을 빼앗으려는 북한군 기습공격을 두 차례 막아냈다.

 

당시 황토도는 주변 아군의 해상봉쇄선상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북한은 이 거점을 장악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습공격을 시도했다.

 

이 중위는 특히 적과의 치열한 교전 중 무전기마저 파괴돼 아군의 지원조차 기대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르렀으나 소대원들과 함께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이처럼 악조건 속에서도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해병에 당황한 북한군은 11291개 대대 병력을 동원, 아군 진지에 집중포격을 실시했고 이장원과 그의 부하 3명은 결국 적의 포탄에 전사하게 된다.

 

소대장의 최후를 눈앞에서 맞이한 그의 소대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을 격멸하고 진지를 사수했으며 3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황토도 공격은 모두 실패로 종지부를 찍었다.

 

이는 적의 해상보급로를 차단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를 받았다.

 

이 중위는 대한제국 시대부터 국난 극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 가문 출신으로 증조부 이남규조부 이충구부친 이승복 선생과 함께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현충원에 4대가 안장된 가문은 이주우언 중위의 가문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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