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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쌍릉 대왕묘' 비밀의 문 열린다!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정밀 발굴조사 착수
이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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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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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익산시 석왕등 소나무숲 속에 아늑하게 자라잡고 있는 "익산쌍릉" 대왕묘 전경.   / 사진제공 = 익산시청     © 이기준 기자


 

 

서동요(薯童謠)의 주인공인 백제 30대 무왕(武王)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는 전북 익산시 석왕동 소나무 숲에 자리한 사적 제87호로 지정된 '익산쌍릉' 대왕릉의 베일을 벗길 문이 열린다.

 

백제 말기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인 '익산쌍릉' 대왕릉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에 앞서 21일 조사의 무사안전을 기원하는 고유제를 시작으로 오는 25일부터 본격적으로 착수된다.

 

익산시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이번 발굴 조사는 지하물리탐사 및 사전 조사를 실시하는 등 과학적이면서도 체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당시 '대왕릉' 모습을 지형적으로 복원하고 발굴된 고분의 정밀실측 등을 통해 봉분의 축조방법 및 석실의 규모와 형태를 밝히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익산쌍릉(사적 제87)' 가운데 북쪽에 있는 "대왕릉"은 백제 30대 무왕(武王)의 능으로 알려져 있으며 1917년 일본인 야쓰이세이치(谷井濟一)에 의해 약식 발굴이 진행된지 올해로 100주년이 되는 해를 맞는다.

 

조사 당시 확인된 석실의 규모와 금송제(金松製) 목관을 통해 부여 능산리고분군의 왕릉에 견주는 무덤으로 보고된 바 있으며 1917년 조사 후 몇 년이 경과된 이후 1920(조선총독부 대정6년 도조선고적조사보고서’) 쌍릉 조사에 대한 결과 보고가 남아있고 출장 복명형태의 간략한 보고문과 사진 몇 장과 개략적인 실측도만 남겼을 뿐이다.

 

이후, 20161월 국립전주박물관에서 발간한 '익산쌍릉'일제강점기 자료 조사보고서 16집에 대왕릉 출토품으로 전해지는 치아가 여성의 것이며 함께 수습된 토기는 신라토기로 발표된 바 있다.

 

하지만, 대왕릉의 피장자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관련 학술세미나 등이 개최됨에 따라 '익산쌍릉'에 대한 체계적인 정밀 발굴조사 등 재검토의 필요성이 제기된 가운데 1단계 사업으로 대왕릉에 대한 조사가 진행된다.

 

익산시 역사문화재과 관계자는 "1세기 만에 우리 학계에서 재조사되는 '익산쌍릉'의 정밀 발굴조사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가 새롭게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향후 쌍릉과 백제왕도 익산은 물론 고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편, 대왕묘의 돌방 바닥은 봉분 꼭대기로부터 7.2m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널방의 규모는 남북 장축의 장방형 평면으로 길이 3.80m너비 1.78m높이 2.27m로 남면 중앙에 널길이 가 설치돼 있다.

 

널문은 너비 1.0m높이 1.5m길이는 1.0m 정도로 널문과 널길 입구는 판석을 세워 막았다.

 

전장은 4.98m로 네 벽바닥천장을 모두 다듬은 판석으로 조립했고 양측벽과 천장 사이에는 장대석을 안으로 기울게 끼워 단면 육각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형식은 부여 능산리나 완주 둔산리 고분에서 볼 수 있으며 바닥 중앙에는 1장의 석재로 된 널받침이 한 단 높게 놓였다.

 

널받침은 길이 2.71m너비 0.85m로 유물은 조사 당시 도굴돼 있었으나 나무 널은 복원돼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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