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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 '12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일본 간담 서늘케 한 최수봉 선생 · 스톤 중령
김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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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2/0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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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2월 독립운동가 최수봉(왼쪽) 선생 및 6.25 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제임스 R. 스톤(오른쪽) 중령.   /  사진제공 = 전북서부보훈지청     © 김을이 기자

 

 

 

전북서부보훈지청은 "국가보훈처가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201612월의 독립운동가로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최수봉(崔壽鳳1894~1921) 선생과 6.25 전쟁 호국영웅에 제임스 R. 스톤 중령을 선정했다"1일 밝혔다.

 

189433일 경남 밀양군 상남면 농가에서 태어난 최수봉 선생은 1910년 사립 동화학교에 편입학해 2년 동안 독립운동가의 가르침을 받으며 조국애와 항일의식을 키웠다.

 

1913년 평양 숭실학교에 입학해 3년 만에 중퇴하고 1916년 평양과 정주에서 광부와 우편배달부 생활을 하면서 독립운동 소식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독립운동의 거점이던 중국 만주로 건너가 펑티엔(현재의 심양)과 안뚱(현재의 단둥) 사이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할 동지들을 규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1920년 의열단이 폭탄을 밀반입하려다 일제 경찰에 적발돼 여러 단원이 체포되자 선생은 김상윤과 이종암 등을 만나 식민통치 기관인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의했다.

 

그는 19201227일 밀양경찰서장이 연말연시 특별경계를 당부하는 훈시를 하는 틈을 타 밀양경찰서에 폭탄 2개를 연달아 던졌다.

 

첫 번째 폭탄은 불발하고 두 번째 폭탄은 터졌지만 순사부장 1명에게 타박상을 입히는데 그치고 말았다.

 

이날 체포돼 재판에 회부된 최 선생은 재판을 받는 동안 "조선의 독립을 위한 노력은 조선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주장했으며 사형이 언도돼 192178일 대구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순국했다.

 

선생에 대한 재판은 상고심까지 진행되었으나 일제는 의거의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판을 속전속결로 진행했고 확정판결 한 달 보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정부는 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6.25 전쟁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스톤(J. R. Stone) 중령은 19501218일 캐나다군 최초로 장교 44사병 873명으로 편성된 경보병연대 제2대대를 이끌고 부산항에 도착했다.

 

선발대로 참전한 경보병연대 제2대대는 대대장 스톤중령의 지휘아래 곧바로 경남 밀양천 둔치에 캠프를 설치한 뒤 현지 적응훈련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바 있었던 스톤은 6.25 전쟁이 터지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했던 평소의 신념대로 한국에 자원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그의 부대에도 그대로 전파돼 당시 한국전에 참전한 영연방 군대 내에서 최고의 용맹성을 갖춘 부대로 재탄생하게 된다.

 

특히, 19514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맞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투를 벌여 대승을 이뤄낸 가평전투는 한국전에서 가장 빛나는 전공 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백병전까지 치러가며 중공군을 몰아냈던 스톤 중령과 그의 경보병연대 제2대대는 오늘날 가평의 전설로 불리며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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