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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갈림길… 절망·고통·슬픔
온 국민, 1%의 기적을 희망하고 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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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4/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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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한 사고가 발생한 6,852톤급 세월호. (사진 = 해양경찰청 제공)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중요한 장비(밸러스트) 오작동·화물 과적·무리하게 이뤄진 객실 증축·해상인명 안전훈련 전무 등이 참사의 원인으로 굳어지고 있는 가운데 청해진해운은 사고 2주전 조타기 전원 접속에 이상이 있음을 확인했지만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전시작품 구입 1억원·접대비로 6,057만원·지급수수료 10억6,267만원·경영자문료로 6,000만원·광고선전비 명목으로 2억3,000만원을 사용했지만 유사업체에 비해 현저히 낮은 급여에 지난해 총매출액(320억원)의 0.0017%에 불과한 54만1,000원만 선원 교육비용으로 사용했다.

청해진해운은 특히 어선과 충돌, 해상 표류 같은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지만 개선 조치는 전무한 상태였고 승객들의 안전은 모르쇠로 일관할 정도로 폐선(廢船)해야 마땅한 노후선박 개조·부실한 안전검사·관련 장비 열악·운항관리 엉망 등이 한데 어울린 예고된 인재(人災)였다는 정황이 검·경 합동수사본부 수사결과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 21일 해양수산부가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에 제출한 ‘세월호 복원성 시험’ 자료에 따르면 한국선급(KR)은 지난해 1월 구조 변경(객실 증축)을 거친 결과를 승인하면서 최대 적재 화물량을 당초 2,500톤에서 1,070톤으로 낮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승객보다는 화물 수송 수입이 훨씬 많기 때문에 짐을 무리하게 적재했을 것이라는 논리가 성립될 정도로 ‘세월호’가 출항할 당시 KR이 승인한 최대 적재 화물량보다 2배(약 2,000톤 추정) 가까이 많은 화물을 싣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배의 앞·뒤·좌·우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아랫부분에 설치돼 있는 스태빌라이저(stabilizer)나 평행수 부족·부실하게 결박된 화물 쏠림·유압으로 작동되는 방향타 고장·급류(맹골수도)에 따른 운항미숙 등 내부적 요인으로 선체가 기우뚱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이 같은 주장은 사고 직후 해양수산부가 ‘세월호’는 당초 사고 직전인 지난 16일 오전 8시 48분 변침(방향 전환) 지점에서 115도 각도로 급선회했다고 밝혔지만 정전이 발생하면서 자동식별장치(AIS)가 차단돼 그동안 찾아내지 못했던 8시 48분 37초와 52분 13초(3분 36초)간의 AIS기록을 복구한 결과,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45도 각도로 선회했던 것으로 드러나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보통 5도 정도 방향을 바꾸는 변침(방향 전환) 지점에서 ‘세월호’가 시속 35km에 해당하는 19노트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45도 각도로 급선회할 당시 과도한 원심력 때문에 화물이 쏠려 균형을 잃은 뒤 복원력이 회복되지 않아 침몰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세월호’에 탑승한 승객 수백 명을 버리고 자신의 목숨만 보존하기 위해 먼저 탈출한 선장 이준석씨(69·구속)‘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살인죄의 고의를 피해자 개인별로 검토해야 하는 만큼, 증거가 뒷받침 할 수 있어야 되기 때문에 ‘법’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 선장이 단 1명의 승객도 구하지 않고 자신만 탈출한 뒤 ‘일반인’이라고 속이는 등 신분을 감춘 미스터리한 정황만 보아도 직접적인 증거가 아니겠느냐는 여론이다.

또 ‘계약직 대타(代打) 선장’으로 배에 올라 사실상 선장의 역할을 부하 항해사에 맡긴 명의(名義)만 선장이라 ‘내 배는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식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탑승객들의 생사가 오가는 순간 명의만 선장도 아닌 고(故) 박지영씨(22)는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승객들의 탈출을 도우다 끝내 빠져나오지 못해 숨진 것만 보아도 이 선장은 어떠한 의무도 하지 않은 것은 명백하고 주장했다.

▲ 승객들을 구조하다 숨진 여승무원 고 박지영씨 (사진 = YTN 방송화면 캡쳐)  

특히 “배가 45도 기운 상황에서도 학생들의 구명조끼를 챙겨주며 승무원들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한다,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 가겠다고 한 박씨의 희생정신과 배려심에 (주)청해진해운·이 선장과 선박직 승무원들은 머리 숙여 반성해야한다”고 비난했다.

이밖에 검·경 합동수사본부의 수사결과 배가 침몰하는 다급한 상황에 적절치 않은 방송으로 수백명의 탑승객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순간 세월호의 일부 승무원(선박직)들은 자신들만 알고 있던 전용 통로를 이용, 탈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선장과 항해사 등 8명의 승무원들은 사고 당시 조타실에 있었지만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인근 선박에 조난신호가 보내지는 비상신호용 ‘디스트레스 버튼’도 누르지 않는 등 어떠한 구조 지침도 따르지 않고 조직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인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 사법처리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기관장 박 모씨(54)는 “배가 많이 기울어 기관실 선원들에게 전화해 탈출을 지시한 다음 선원들만 다닐 수 있는 통로를 이용, 3층으로 내려가 기관실 선원들과 만나 함께 밖으로 나가 해경 단정에 올라 탈출했다”고 진술했다.
 

*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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