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판치는 나라
▲ 대한적십자사가 실종자 가족·구조인력 등을 대상으로 인도주의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진 =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 화면 캡쳐) © | |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구호봉사단체들이 전남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위한 봉사에 참여하며 정감이 살아 숨 쉬는 우리 사회의 진면목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들은 실종자 가족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좀 더 힘을 낼 수 있도록 "밥 차 운영·배식봉사·심리상담·의료 및 필요한 물품 지원·물리치료·주변청소 등 다양한 부분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있다.
특히, 자원봉사자들은 현장 방문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일부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에 비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기 위해 언제나 재난구호 현장에 속속 모여들어 든든한 버팀목으로 활약해 '작은 영웅'들이 판치는 나라를 만들며 훈훈함을 자아내고 있다.
또, 경기도 안산 개인택시조합에 소속된 회원 500여명도 번갈아가며 생업을 포기하고 하루 20여대의 차량을 이용, 희생자 가족들이 안산과 진도 380km를 오가거나 하는 경우에 무료로 교통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도 급식차량 5대와 1,600여명의 봉사요원을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비롯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안산 올림픽기념관 주변 및 병원·각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안내하는 등 유가족을 돌보는 손길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가 실종자 가족·구조인력 등을 대상으로 인도주의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긴급 재원은 '적십자회비'와 '세월호 침몰 관련 자발적 후원 금품'으로 이뤄진다.
한편, 세월호 침몰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돕기 위한 각계의 온정과 기부 릴레이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 잠수요원 악전고투… 가족이 갇힌 심정으로
▲ 전남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한 사고가 발생한 6,852톤급 세월호. (사진 = 해양경찰청 제공) © | |
침몰 발생 이후 해양경찰과 군·민간이 총동원 돼 실종자 구조 및 수색을 위한 사투가 계속되고 있지만, 희망의 소식은 아직 들려오고 있지 않다.
차가운 바람과 바닷물에 몸을 맡긴 채 선체와 연결된 가이드라인(생명줄)을 따라 침착하게 접근하는 잠수요원들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선체를 손으로 더듬어가며 “단 1명의 생명이라도 살려 내겠다”는 다짐으로 한 손에 손전등을 움켜잡고 거침없이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잠수부 전원이 투입될 수 있도록 길(생명줄)을 만드는 사투를 벌이거나 좁고 어두운 선체 내부에서 실종자 수색과 인양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가족이 갇힌 심정”으로 목숨 걸고 최소한의 휴식만을 취한 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30m 아래로 가라앉은 여객선 선체로 몸을 맡겨 바다의 작은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다.
한편, 지난 22일 오후 1시 37분께 수중탐색작업을 마치고 복귀한 해군 UDT 요원(상사) 1명이 바다 속과 수면 위의 수압차로 체내에 들어간 질소기체가 혈액 속을 돌아다니며 몸에 통증을 유발하는 잠수병으로 추정되는 마비 증세를 갑자기 보여 치료를 받고 있는 등 민감잠수사 4명도 '청해진함'에서 도움을 받았다.
▲ 무성의하고 황당한 행태, '불신의 벽' 높여
안전불감증이 빚은 참사로 기록되고 있는 이번 여객선 침몰 사고를 계기로 정부의 안전대책 및 위기관리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참담한 인재(人災)가 발생할 때마다 비정상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다"며 "즉흥적인 정책입안과 사후약방문격인 각종 안전대책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잠자고 있는 정부의 3,000개가 넘는 매뉴얼을 근본적으로 깨울 수 있도록 국가재난관리시스템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위기관리체계가 무용지물이라는 비난은 실종자 가족들과 정부 모두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잘못된 관행과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노출, 유족과 실종자 가족·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만 안겨주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가 지난 16일 가장 기본적인 숫자조차 오락가락하면서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우지 못한데 이어 원활하지 않은 실종자 수색·일부 고위공직자들의 부적절한 언행과 행동·희생자 가족을 위한 당국의 섬세한 배려 부족 등이 불신의 골을 깊게 만들며 후폭풍을 불러 일으켰다.
사고 당일인 16일 오후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유가족들이 진도실내체육관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팔걸이가 있는 의전용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포착돼 '황제 장관'이라는 빈축을 샀다.
또,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동행한 안행부 A국장이 지난 20일 오후 6시께 팽목항 대합실 건물 1층에 마련된 상황실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을 시도하다 유가족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밖에 해경 중견간부가 "80명을 구했으면 대단한 것 아니냐"는 부적절한 발언에 잇따라 희생자 신원 확인을 놓고 빚어진 갖가지 허술함을 보인데 이어 새벽에 시신 인양을 위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 오라·상황판에 허술하게 게시된 희생자 인생착의 등 관계 당국의 무성의하고 황당한 행태가 유가족들의 마음을 두 번 울리고 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1일 청와대 수석비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의 위기대응시스템과 공무원들의 안일한 근무기강 등에 대한 재정비·후진국형 사고에 따른 철저한 규명·관련자에 대한 일벌백계를 약속하는 등 재난대응 능력의 철저한 쇄신을 강조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자리보전을 위해 눈치만 보는 공무원들은 우리 정부에서 반드시 퇴출시킬 것"이라며 "국민이 공무원을 불신하고 책임행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한다면 그 자리에 있을 존재의 이유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온 국민은 세월호의 기적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안산 올림픽기념 실내체육관 1층에 마련된 임시 합동분양소에는 가슴시린 이별이 이어지고 있고 전남 진도 팽목항에는 사망자만 계속 확인되면서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특히, 실종자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온 국민의 간절한 바람을 뒤로한 채 기다리던 실종자 생환소식은 아직도 들려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1주일 넘게 자식을 기다리고 있는 학부모들의 눈물만이 가득차고 있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적어 유속이 평소보다 크게 약해지는 소조기의 마지막 날인 지난 24일 문화재청 해저발굴단까지 합류해 가장 많은 잠수요원들이 바다로 투입돼 수색 작업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사고 현장인 맹골수도는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조류가 심해 구조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면서 온 국민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생존자 구조 소식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학생들이 대거 몰려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3층과 4층 중앙 객실 수색을 위해 UDT·SSU·특전사·해경·소방·머구리 잠수사로 불리는 심해잠수요원 등 총 700여명의 잠수부가 실종자 구조와 수색작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하지만, 한동안 맑은 날씨를 보였던 진도 앞바다는 파도가 높아지고 바닷물의 흐름이 점차 빨라지고 있어 자칫 수색 작업에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에 26일부터 흐려져 비가 내리며 풍랑도 거세질 것으로 예보됐다.
▲ 수사 상황
▲ 선장과 선원들이 단체로 조타실과 기관실에 모여 있다 승객보다 먼저 탈출해 해경 구조선에 오르고 있다. © | |
사고원인과 책임소재·구조적 비리까지 낱낱이 파헤쳐 원천적으로 제2의 세월호 참사라는 악몽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사고발생 9일째를 맞고 있는 25일 검경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부)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선장과 선원들이 단체로 조타실과 기관실에 모여 있다 승객보다 먼저 탈출했고 기관부원 7명은 첫 번째로 도착한 구조선에 옮겨 탄 것으로 속속 드러났다.
합수부가 책임자 규명을 위해 보다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는 등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다양한 변수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참고인들의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져 사법 처리되는 인원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인천지검은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비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민·관의 불법적 유착 및 공생 관계·선박검사와 인증을 담당하는 한국선급을 비롯한 해운업계의 고질적인 불법 등을 밝혀내기 위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특히 부산지검 특별수사팀은 청해진해운 실소유주인 유병언씨 일가의 개인비리와 해운업계의 고착화된 비리 등에 초점을 맞는 등 '낙하산'을 탄 전직 해양수산부의 비리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전·현직 고위 인사들에게 칼날을 정조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세월호 참사 원인 등을 수사 중인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선원들의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린 만큼, 해경 조사요원을 배제한 뒤 사고 발생 후 구조 상황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초기 대응 실패라는 지적과 관련, 해경 등 공무원에 대한 수사에도 착수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