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선착순의 삶을 경험한다. 선착순은 개별 사정이 고려되지 않는 냉정한 방식이긴 하지만 경쟁에 따른 갈등을 줄일 수 있는 합리성 때문에 늘 선호된다. 특히, 공급보다 수요가 커서 분쟁 조짐이 있을 때 우리는 '줄서기'라는 선착순을 선택하곤 한다. 군산과 전주에 매일 길게 늘어서는 특별한 줄이 있다. 그 어떤 줄보다 기대감과 설렘이 강한 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군산 이성당, 두툼하고 진한 맛으로 한 번 맛본 사람이라면 그 맛을 평생 잊을 수 없다는 전주의 풍년제과 앞에서 '빵'을 사기 위해 서는 줄이다. 20여 년 전부터 전국을 휩쓸기 시작한 프랜차이즈 빵집들 속에서 살아남은 정말 특별난 가게들이라 소개하고 싶다. '~당'과 '~제과'라는 친근한 이름. 뾰족한 상고과자와 흰 설탕을 가득 묻힌 꽈배기를 팔던 어릴 적 전남 보성의 한 동네 빵집을 떠오르게 한다. 팥빵, 튀김소보로빵, 야채빵, 샐러드빵, 크림치즈빵, 모나카, 나비파이 등 익숙한 이름이 대부분이다. 영어나 불어로 된 이름 모를 고상한 빵일 줄 알았는데 소박하기 그지없다. 왜 이런 평범한 빵을 먹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와 줄을 서는 걸까. 한 입 베어 물면 진한 팥 향기가 입안에 가득 차고, '아~'라는 탄성과 끄덕임이 저절로 나오는 부드러운 크림치즈빵. 사실 의문이다. 맛있는 것이 얼마나 넘쳐나며 또 많은 풍요의 세상이 아닌가! 맛 외에 분명 뭔가 있을 것 같다. 혹시 '진품'이란 점 때문이지 않을까. 빵이 진품으로 평가받으려면 최소 두 가지 조건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일관성'으로 맛이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건비와 상점 임대료, 더 많은 이익금을 남기기 위해 재료를 속이고 양을 줄이는 것이 일상인 현대 사회에서 수십 년 동안 같은 맛을 지킨다는 것은 물론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두 번째는 '진정성'이다. 온갖 정성이 담긴 그 가게만의 스타일로 현장에서 바로 만든 빵, 온기가 남아있는 빵을 구입하며 고객들은 진짜를 느끼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군산 이성당과 전주의 풍년제과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빵을 만드는 실제 장면을 공개하고, 직원 모두가 흰 가운과 마스크를 착용하는 등 매우 위생적이라는 점이다. 일관성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신뢰가 전해지는 약간의 서비스만을 제공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대단히 만족해한다. 그런데, 얼마 전 몇 곳의 빵집이 서울 소재 백화점 입점 소식은 왠지 모를 씁쓸함을 전해준다. 직접 찾아갈 수 없는 많은 사람에게 그 맛을 전하겠다는 생각은 좋으나 지나친 상업성이 개입돼 흔해지기 시작하면 그곳 그 빵만의 특별함이 사라질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최근 우리 삶에 작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삶의 수준이 향상되면서 비싸고 고급스러운 것만을 좋은 것이라 여기던 관념이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저렴한 것을 하찮게 여기지 않으며, 평범함 속에서 빛나는 특이한 것에 대한 선호 경향이다. 그렇다고 질이 떨어지는 싼 것을 찾지는 않는다. 단지 '특별함'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그 특별함의 중심에는 반드시 '장인정신'이 자리한다. 장인정신!! 원래 그대로의 역사를 지켜가는 일관성을 기본으로, 올바른 재료 선택과 충분한 시간 속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것. 또,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으며, 더 나은 것(제품이나 작품)을 위해 늘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자세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지거나 창안된 것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결과로 나타난다. 첫째, 마무리가 덜 돼 허접하지 않으며 과대 포장으로 내용을 속이지 않는다. 둘째, 선대(가문)로부터 전해지는 그 내용 그대로 충실히 재현하며 절대 즉흥적이지 않다. 셋째, 가격대를 불문하고 풍기며 전달되는 형언할 수 없는 그것만의 특별한 품위 등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이 이런 결과로 나타난다면 우리 삶의 수준은 어떻게 될까? 분명 급상승할 것이다. 그렇다면 해야 하지 않겠는가. 모든 것을 장인들이 할 수는 없겠지만, 장신정신으로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장인정신은 새것을 제작하는 데만 적용되지 않는다. '장인 같은 공무원' '장인 같이 일하는 상인' '장인정신으로 가르치는 선생님' '장인문화를 꽃피우는 사장' '그 밑에서 장인정신으로 뭉친 직원' '심지어 장인문화로 가꾸어가는 도시'도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정성을 기울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장인이 될 수 있고, 장인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진득함을 잃고 있는 우리 사회는 장인들을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겉모습보다는 속을 보며, 대강 대강보다는 철저한 원칙을 지키며, 격식과 의전보다는 자유로움과 소통을 중시하며,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인정하고, 지나친 상업주의와 한탕주의를 멀리하는 그런 뚜렷한 장인정신을 가진 수많은 사람을 지금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 더 필요로 한다. 하지만, 장인정신은 남이 보편적으로 택하지 않는 좁고 힘든 길을 선택할 때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것이기에 모든 사람이 그리 될 수는 없다. 여기에서 잠깐 근원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싶다. 성장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기성세대가 늘 해왔던 '보편적 선택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에 적합한 미래를 스스로 찾게 하며, 그 선택의 기준이 부와 명예가 아닌 내면의 자긍이 되게 하는 일이다. 장인과 같이 자신이 해야 할(만들어 야 할) 것에 꿋꿋하게 심혈을 기울이며, 그것이 그 어떤 것(악이 아닌) 이라 할지라도 이를 인정하고 격려할 수 있는 그런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따끈한 빵을 기다리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같이 먹을 가족과 선물할 사람을 떠올리지 않을까. 곧 입안에 녹아들 달콤함을 기대하며 미소도 짓지 않을까. 빵 줄 뿐만 아니라, 그런 행복을 전해주는 줄이 있다면 아무리 길다 해도 기꺼이 설 것이다. 장인들과 장인정신으로 꽉 채워진 그런 도시!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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