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삼백예순날 숨이 차게 달려온 올 한해도 지는 해처럼 저물어 간다. 한해의 끝자락에서 뒤 돌아 보면 크나큰 희망보다는 삭이지 못한 아쉬움이 더 많다. 어느 해고 새해 첫날이 되면 뉘라 할 것 없이 다짐을 한다. 금년에는 담배를 꼭 끊고 술도 조금 마셔야겠다고 굳게 가다듬어 뜻을 정했었지만 12월 한 장 남은 달력을 쳐다보는 손에는 여전히 담배가 손에 쥐어져 있고 어제 저녁 과음한 속 또한 여전히 더부룩하다. 아마도 대부분은 사소한 다짐과 약속마저도 작심 3일로 끝나버린 한 해가 된 것은 아닌가 싶다. 2013년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제구포신(除舊布新 )이었다. "구태를 버리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바라는 소망의 뜻이라며 청년세대가 희망을 갖고 새 시대를 시작하고 중년들이 이 나라를 올바른 기초위에 있기를 희망하고 나라가 안정 되도록 진리가 실천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추천의 이유였었다. 이런 기대와는 달리 유행한 신조어는 '멘붕'(멘탈 붕괴)이었다. 황당하고 충격적인 일을 겪어 공항상태에 빠진 것을 뜻하는 말이다. 무릎 꿇고 삿대질을 당하면서도 목구멍이 포도청이 돼서 비굴하게 살아온 우리, 이게 우리의 자화상이고 지난해, 저지난해의 우리의 민 낮이고 금년 역시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결국 우리는 세대별로 서글픈 기억만을 꺼내 든다. 오직하면 "안녕들 하냐"고 묻는 대자보에 대학생만이 아니라 중, 고생은 물론 중, 노년층 까지 호응을 한다. 그만큼 우리들을 안녕치 못하게 만든 정치, 경제 , 사회적 이유들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행복은 스스로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정답이 아니다. 경제학자인 루이사코라도 박사는 개인적 행복에는 사회적 신뢰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안녕 하십니까" "네"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하면 되는 일상의 언어에 토를 다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그렇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랬듯이 사는 게 금년 또한 마음 편 하지 않았지만 사회고발 다큐처럼 그리 막막한 것만도 아니었다. 어느 집이나 고만고만한 우환은 있어도 남들이 경악할만한 우환은 없었던 것처럼 어쩌면 세상엔 100% 나쁜 것, 100% 싫은 것, 100% 좋은 것은 없다. 다만 내가 그것을 단단히 찍어 놓고 삐딱한 시선으로 한 쪽 면만 바라보고 그렇게들 1년 내내 살아 왔는지 모른다. 금년도 며칠 안 남았다. 차분한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다. 송별의 시간위에는 회한이 많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가족의 사랑이, 친구와의 우정이 살아 있을 것이다. 때론 팍팍하고 힘들었던 한 해 이었겠지만 함께했던 정겨운 사람들로 해서 그 어느 날 우리가 살았던 이 한해가 이렇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채워질지도 모른다. 괴로웠던 것 다 털어 버리고 “안녕 하냐"고 묻고 고민을 나누며 새해를 맞이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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