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고3 수험생들에게 알립니다!
서남분실장 이한신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기사입력: 2015/11/08 [12:03]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수능에 목숨 걸지 마십시요"

 

'오늘은 어제 죽은 자들이 간절히 살고 싶은 내일이며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다'

 

누군가 현실의 삶에 대한 중요성을 이렇게 의미 있는 말로 표현한 것이 생각이 난다.

 

해마다 수능을 치루고 나면 간간히 '자살'이라는 뉴스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깝게 한다.

 

수능성적 때문에, 대학 때문에 목숨을 끊는 그 어리석음을 어떻게 이야기 하면 좋을까.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학교라는 제도권 속에 들어오면서부터 소위 1, 100점이라는 단어에 익숙해 진다.

 

거기에다 '누구누구는 어떻고 누구누구는 어떤데 너는 왜?'라는 비교를 통해 자신의 소중함은 서열과 경쟁 속에 묻어버리고 오직 상급학교 진학과 성적지향주의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만다.

 

자신의 삶을 당연한 듯 성적에 귀속 시켜버린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수능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이고 이 과제를 제대로 치루지 못했을 때는 1년 뒤의 기회가 분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미래에 또 다른 기회를 생각하기 보다는 현실에 놓인 자신의 모습과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을 청소년 스스로 판단하고 결국 죽음이라는 극단의 방법을 통해 벗어나려고 한다.

 

물론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과연 그렇게 목숨을 끊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것을 죽은 후에는 알게 될까 수능 10여일을 남겨두고 치루지도 않은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수능 실패, 자살이라는 끔직한 단어를 사용함에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곧 닥칠 현실을 가늠해 볼 때 무리한 예측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시쯤에 수험생 자녀를 둔 어머님들과(물론 아버님도 계시지만 통념상 어머님만을 지칭함을 양해구하고자 한다) 수험생들에게 조언을 하고자 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 수많은 어머님들이 가슴을 치고 몸서리 쳐지는 고통 속에 절규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중에서도 그 아픔의 강도가 몇 배나 더한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수학여행가기 전날, 내일 수학여행 간다는 설레 임에 친구들이랑 신발도 사고 옷도 사고 싶어 '하루만 학원을 쉬면 안될까? 갔다 와서 몇 배나 더 열심히 하겠다!' 라며 간절하게 매달리는 딸에게 '내일부터 4일간 신나게 놀거니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 안된다'며 억지로 학원을 보낸 냉정한 어머니, 물론 자녀의 앞날을 위해서 작은 배려조차 방종이 되고 한번 열어주면 또 열어주기를 바라는 습성을 알기에 단호하게 통제한 그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결국 그렇게 축 늘어진 어깨로 학원을 갔던 딸아이가 다음날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버리고 난 후에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아쉬움은 굵은 쇠못이 되어 어머니의 가슴을 후벼파고, 그리 곁을 떠날 줄 알았었다면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게 할걸! 이라는 후회의 눈물은 피눈물이 되어 가슴을 적셨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 여엿이 성숙한 내 피붙이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물론, 세월호 사건을 비유한 것은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으나, 나중에 행복을 위해서 지금의 참음과 인내를 요구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너무 가혹하다 느껴진다.

 

수능을 실패한 자녀가 가장 크게 느끼는 부담감은 무엇일까?

 

미래, 경쟁한 친구에 대한 자존심, 선생님의 실망감, 글쎄...  필자의 생각으로는 '자기보다 더 수험생처럼 살아오신 어머님이 아닐까' 라는 생각 든다.

 

"몇 점 정도 나올 것 같아? 어렵지는 않았어?"라고 묻기 보다는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거야! 맘 편히 먹고 그동안 못한 거 실컷 하도록 하자!" 라면 어떨까?

 

언제부터인가 어른들 사이에 '3 부모'라는 말이 '3 수험생'이란 말보다 더 '고생하겠다!'라는 의미가 더 진하게 느껴져 오고 있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두 가지 말이 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면 즐기라!'는 말과 '최선을 다하고 최악을 대비하라!' 말이다.

 

어차피 내가 아니면 대신 넘어가줄 수 없는 인생의 길임에, 즐기면서 넘어가자는 것이다.

 

싫다 해도 가야하고, 가기 싫어도 넘어야 하는 언덕이라면 말이다.

 

부모님이 원하시지 않는다고 해서 안한 것이 얼마가 되는지 자신에게 질문해 보기 바란다.

 

흔히 Freud의 자기방어 기재중에 '투사'라는 것이 있다.

 

자기의 문제로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선택하든 부모님이 강요를 하셨든 걸어가는 주인공은 ''.

 

지금 되돌아 갈 수 없다면, 그냥 최선을 다해 한번 넘어보는 것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되 최악을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내가 준만큼 받으려고 한다.

 

아니 그 보다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그래서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하고 좌절한다.

 

대한민국의 수험생들에게 다시금 부탁하고 싶은 말은 최선을 다하고 최악을 대비하는 준비된 마음을 가지기를 바란다.

 

인생은 한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갈림 길이 있다.

 

한 단계 더 올라서서 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인다.

 

즉, 눈앞에 길만이 길이 아니란 뜻이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노력은 하되, 결과는 최악을 대비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겨진다.

 

 

 

ⓒ 브레이크뉴스 전북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 도배방지 이미지


'희망 2025 나눔캠페인' 출범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