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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삶과 죽음…
김현종 전북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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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1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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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행복하게 오래 살고 싶어도 아무리 아름답게 삶을 가꾸어도 죽음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생명이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끝나고 마는 것이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어린이도젊은이도가난한 이도부유한 이도약한 사람도강한 사람도착한 사람도악한 사람도.

 

인생은 언제나 외로움 속의 한 순례자, 찬란한 꿈마저 말없이 사라지고 언젠가 떠나리라. 인생은 나뭇잎바람 부는 대로 가네.

 

잔잔한 바람아, 살며시 불어다오.

 

언젠가 떠나리라.

 

인생은 들의 꽃,

 

피었다 사라져 가는 것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 세상을 언젠가 떠나리라.

 

람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강렬한 의미를 가진다.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세포가 끊임없이 자기복제를 하면서 대체하지만 그 과정은 언젠가 고장 나게 된다.

 

우리 몸의 전체를 싸고 있는 세포는 끊임없이 변해가면서 결국 노화의 과정을 맞게 된다.

 

,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은 늙는다는 것이다.

 

푸슈킨의 시 가운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로 시작되는 이 시를 통해 시인은 절망고통이별희망기쁨재회가 공존하는 삶의 본질을 받아들여 순응하지 않으면 인간은 균형을 잃고 죽음을 만나게 된다고 노래한다.

 

과학적으로 삶이란 세포가 분열을 통해 형태가 조성되고 반사 신경 등 뇌에서 보내는 신호나 자극을 감지해 자동적으로 본능이라 불리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게 세포활동이 이뤄지다 수명을 다하면 세포들이 멈추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현세도 잘살지 못하면서 내세까지 염려한다.

 

그것은 종교계에서 말하는 미지의 천당(극락)이나 지옥보다는 현실에 충실하며 사람다운 삶을 고뇌해야 한다는 의미다.

 

옛날은 수명을 다하면 '북망산(北邙山)'으로 간다고 했으나 요즘은 그 초입에 마련된 납골당으로 가는 것 같다.

 

그도 아니면 화장해 산이나 강물에 뿌려지곤 한다.

 

납골당(納骨堂)은 화장(火葬)한 유골(遺骨)을 안치(安置)하는 집이다.

 

그런데, 화장을 한들 유골을 영구적으로 보관해 둘 곳이 없는 일부 사람들은 버리거나 매장(埋葬) 역시 관리할 후손이 없다보니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납골당 또는 장지에 안치되지만 그 정신()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필자는 '도미니코' 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교인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악에서 구하시려고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죄를 대신해 속죄양이 되어주셨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처럼 우리가 서로 목숨을 바쳐 하느님과 내 이웃을 사랑할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음에서 부활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우리는 100여년 전만해도 농경생활로 호구지책에 급급했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주변에 교회나 성당은 아예 없었다.

 

우리 삶에 필요한 것은 각종 법규나 납골당 역시 그 시대의 필요에 따라 제정되거나 폐지될 따름이다.

 

온전한 동식물은 육신과 정신이 정상적이며 어느 한쪽에 치명적인 장애를 지니면 그 대(후손열매)는 거기서 끊긴다.

 

내세 운운함은 사회적인 질서를 다스리는 선의의 방편이지 내 육신은 죽음으로 산화(散華)되고 그 정신(후손)으로 혈통을 잇는다.

 

지상의 모든 동식물들도 어느 땐가 수명을 다하면 몸통이나 가지는 메말라서 고목으로 사라지고 그 뿌리나 열매가 연년세세 종()을 이어간다.

 

오직 사람이 다른 점은 조상(육신)에 대한 숭배사상이다.

 

, 옛날 풍장이나 고인돌로부터 매장에서 오늘날의 장례(화장) 문화에 따른 납골당이다.

 

미국이나 유럽중국 등지와 비교해보면 화장이나 평토장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처럼 진지한 모습은 느끼지 못했다.

 

우리는 예로부터 명당 운운하면서 철저하게 묘소를 잘 관리하며 추석 명절을 전후해 대대적으로 벌초에 나선다.

 

필자는 약 300평 규모의 가족묘지 조성과 함께 몇 차례 석물(비석 상석 등)도 건립했다.

 

우리 생전에 주택은 잘해야 100년 전후지만 사후에 안치될 납골당은 영원한 것이다.

 

그런 납골들과 묘소를 현재의 후손들이 챙기지 않으면 영원히 그 흔적마저 지워져 버릴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생에 있어 목표가 뚜렷하지 못하면 방황하며 불안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교육정책이나 장례 법률도 문제지만 부모 슬하에서 성인이 되기까지는 최선을 다해 배우며 진로를 결정해야한다.

 

젊어서는 그 진로를 향해 열심히 생활하고 늙어서는 베풀면서 하루하루 즐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승을 떠난다 해도 미련 없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다소 우려스러운 것은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고에 시달리는 시간(요양원 생활)이다.

 

하지만, 인생의 생로병사(生老病死) 이 네 가지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닌가!

 

늦가을은 산천에 풀 한 포기와 나뭇가지에 이파리 하나 남기지 않으려고 찬 서리와 매서운 북풍이 몰아친다.

 

이는 그 생명체를 멸종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내년 봄 다시 그 언저리에 새 생명의 싹을 틔우기 위해서다.

 

평소 건강했고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던 40대 후반의 지인이 최근 맹장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수술 이후 고열을 동반한 징후를 나타내며 의식을 잃은 뒤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여우같은 마누라토끼 같은 자식' 들을 남겨둔 채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이승의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침통한 분위기 속에 장례식장을 찾은 각계각층의 조문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가족과 고인의 친구 및 지인들은 장지를 향해 떠나는 그의 마지막 길을 속절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기에 영결식장은 한 순간 눈물바다로 변해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납골당에 안치된 고인의 영정 사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엷은 미소는 '삶이 참으로 덧없고 기약하기 힘들며 오는 것은 순서가 있어도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같아 무거운 발걸음을 되돌리며 삶의 겸허함 및 소박함을 가슴속에 담아 영원한 안식을 두 손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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