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 예수병원 12대 병원장을 역임한 설대위(david john seel) 박사의 미망인 설매리(mary batchelor seel) 여사가 지난 28일 밤 11시 30분에 타계했다.
▲ 예수병원의 진단검사의학과와 병리과를 개설하고 전산화 기틀을 세운 故 설매리 여사의 생전모습. ©김현종 기자 | |
설매리 여사는 미국 노스케롤라이나 버밍햄에서 차녀 크리스틴(christine, 버밍햄 의과대학 교수) 부부와 함께 살면서 간암 수술을 받았으며 최근 병세가 악화돼 버밍햄 의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84세 일기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설매리 여사의 장례식은 10월 4일(일), 기념예배는 10월 11일(일)에 거행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장남 존 실 2세(john seel, 51세, 작가, 대학교 교수)와 장녀 제니퍼(jennifer, 49세, 교사), 크리스틴(christine, 의과대학 교수)이 있다.
▲설매리(mary batchelor seel) 여사?
한국전 직후인 1954년, 황폐한 대한민국의 전주, 예수병원에 설매리 여사는 남편 설대위 박사와 함께 첫 발을 내 딛었다.
남편과 함께 한국전쟁의 폭발물 부상 환자와 굶주림에 기력을 잃은 아이를 비롯 전염병 환자를 치료하느라 설매리 여사는 수많은 날들의 밤을 지새웠다.
예수병원은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와 진찰실은 발을 디딜 틈이 없었으며 여관이나 병원 입구 계단에서 입원실이 빌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당시 설매리 여사는 예수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예수병원의 진단검사의학과와 병리과를 개설하고 전산화 기틀을 세웠으며 기독의학연구원의 발전을 돕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그결과 설매리 여사는 1958년에 몸을 돌보지 않는 과로로 인해 심각한 요통을 얻기까지 했다.
남편인 설대위 병원장은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에 힘입어 예수병원에서 탁월한 능력의 경영자로서 수많은 업적을 남기는 등 국경을 초월한 인술을 펼쳐 한국의 슈바이쳐라고 불렸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호남을 대표하는 병원, 예수병원의 이름으로 우리나라와 지역사회에 의료와 선교를 통한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에 따라 설대위 병원장에게 대한민국은 1976년 국무총리 표창, 1978년 국민훈장 목련장(대한민국 대통령)을 수여했으며 전라북도는 1997년 전북도민의 날 행사에서 명예 도민증을 증정하기도 했다.
설매리 여사는 남편과 함께 36년간 의료의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전주에서 의료와 봉사와 선교에 헌신했다.
그녀는 환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따스한 손길로 환자를 감싸 안아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인자한 어머니였다.
설매리 여사는 뜨거운 정열로 그녀의 젊음 전부와 전 생애를 예수병원에 바쳤다.
황폐한 우리나라에 큰 사랑을 품고 예수병원에 왔던 부부는 선교사로서 모든 소망과 꿈을 이루고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선진국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을 뒤로하고 1990년 꽃다발을 가슴에 한아름 안고 흐뭇한 마음으로 고향인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모든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암치료선형가속기를 기증한 것을 비롯 예수병원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과 기도로 언제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줄곧 든든한 어른의 위치를 지켜왔던 것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조용한 시골 마을의 노 부부 아담한 집에는 지금도 한글 이름의 문패가 걸려 있다.
미국에서도 노 선교사 부부는 대한민국과 전라북도와 예수병원을 그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했으며 영원하고 진정한 예수병원인, 전북도민, 그리고 한국인이었기에 이 기사를 故 설매리(mary batchelor seel) 여사의 영전에 올린다.
전주 / 김현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