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정개혁을 실천에 옮겨 주민자치 행정기구로 지칭된 “원평 집강소” 건물이 그동안 개인소유 가정집으로 사용되다 방치돼 붕괴위기에 직면했으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 사진제공 = 김제시청. © 김현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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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소유 가정집으로 사용되다 방치돼 붕괴위기에 직면한 "원평 집강소"건물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4일 전북 김제시는 "문화재청에서 집강소 건물과 부지를 긴급매입, 복원 후 김제시에 위탁 관리하는 방안이 최종 결정됐다"고 밝혔다. 특히 "문화재청의 긴급매입 심의결과 원평 집강소 긴급매입 및 복원이 최종 결정됨에 따라 문화재청, 김제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및 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의 상호 협력 체제를 구축해 역사적 고증에 따른 복원방향의 설정 및 향후 집강소의 취지에 부합하는 민‧관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 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제시는 그동안 김제동학학술연구용역, 김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지원조례제정, 원평 집강소 긴급매입 및 구미란전적지 긴급발굴, 등록문화재신청 등을 추진하는 등 문화재청으로부터 유적의 중요성을 인정받기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원평 집강소는 원평 학원마을에 거주하던 백정출신 동록개라는 사람이 김덕명 금구대접주를 찾아가 “신분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며 헌납한 건물로 폐정개혁을 실천에 옮기고자했던 주민자치 행정기구라 할 수 있다. 또, 원평은 동학농민혁명운동에 상당한 중요성을 지닌 지역으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는 전조가 되는 사건이었던 원평취회가 일어났던 곳이다. 또한, 전봉준이 수천명의 동학교도를 거느리며 전라우도를 호령했던 집강소가 있었던 곳으로, 우금치전투에 대패한 동학농민군이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구미란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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