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송상현 광장에 세워진 송상현 동상. / 사진제공 = 부산시 시설관리 사업소 © 이용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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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지방자치 시대도 22년이 지나고 있다.
민선시대 20여 년의 지난 시간들 속에서 어느 지자체는 자치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지역이 혁신적으로 발전, 변화됐다는 측면들도 있지만 어떤 지자체는 관선시대에 비해 민선시대 20여 년 동안 오히려 지역발전이 퇴보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지방자치시대는 곧 로컬(local)시대의 개막이었다.
소프트하지만 로컬시대에 걸맞게 준비된 단체장들은 속속 해당 지역의 현안 해결과 함께 지역의 토속적인 문화적 자산들을 지역의 소중한 자긍심으로 만들어갔다.
반면 그 과정에서 정치력은 있었지만 지역에 대한 자긍심 회복보다는 인기에 급급한 나머지 국민 혈세를 나누어주듯 민생현안에만 매달렸던 단체장들은 퇴임 이후에도 실속 없이 지역을 퇴보시킨 주역으로 남아야만 했다.
그 같은 엇갈린 평가는 지방 자치단체는 국가와는 별개로 행정의 주체가 되는 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지자체의 공권력과 공무의 주체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공적인 평가를 듣는 지자체에서는 저마다의 지역적 특성을 내세워 지역적 자긍심을 유발하고 지역 화합을 이끌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
즉, 성공적인 치적을 먼저 보이기보다 고통을 감내하면서라도 지역을 중·장기적으로 성공적인 기반위에 올려둔 단체장은 경외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렇지 못하고 인기에 영합해 치적 쌓기에 몰두했던 단체장은 퇴임 이후까지도 지역을 퇴보시킨 주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민선시대 정읍시의 문화·관광 정책은 민선 1~2기까지 정읍의 3보, 즉 정읍사와 내장산, 동학농민혁명을 주축으로 한 정책이었고, 민선 3기 시대에 접어들며 현재의 태산선비문화권역이 더해지며 4대 문화권역으로 구체화된바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정읍시는 민선 6기 시대에 있다.
뒤늦게 민선 5기 시기부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읍 내장산이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의 주요 보존 터라는 사실을 밝히고, 해당 지역을 전라북도 기념물로 격상시킴으로써 지역적 자긍심을 유발시키는 노력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 다른 말이 ‘개연성의 연결’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전체적인 개연성이 나열되지 않은 채, 조선왕조실록 보존의 성지라는 섣부른 정책은 오히려 여러 지자체의 반감을 불러올 수밖에는 없다.
그동안 정읍시와 정읍시의회는 귀납적으로 정읍사를 겨냥한 고대사와 동학농민혁명을 겨냥한 근현대사의 개발에 정치력을 모아왔고, 조선왕조실록의 모든 개연성의 키를 쥐고 있는 일재 이항에 선생에 대한 사상사적 조명에 있어서는 “하서 김인후나, 퇴계 이황, 남명 조식에 비해서도 인지도가 떨어지지 않느냐”며 예산자체를 삭감해 왔었다.
그에 대한 특별한 행정적 조치나 조명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재 이항에 대한 조명은 더 나아가 이순신 장군의 “약무호남 시무국가”의 발언 이면에 늘 정읍이 그 중심에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한 것일 수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밖으로 나아가 왜적과 맞서고 내적으로는 조선 태조의 어진과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냈던 일재 이항의 문하생들에 대한 역사적 조명은 지난 420여 년 동안 실종돼 왔던 정읍의 사상사적 측면들을 올곧게 후대로 이어주는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그의 문하생으로 조선왕조실록 1차 피난의 주역이던 안의를 대신해 다시 정유재란 당시 2차로 왕조실록을 묘향산으로 옮겨 수호했던 손홍록의 후손이 바로 동학농민혁명 삼 두 장군 중 하나인 손화중 이었다는 역사적 사실들도 그 개연성이 조명되지 못했다.
때문에 그동안‘왜 기존의 영은산(靈隱山)이 갑자기 내장산(內藏山)이 되었는지의 사실조차 설명되지 못했으며, 정읍 지역 향토사가 행정적 지원이나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진 사이 정읍사는 지리산, 방등산, 선운사에 그 역사적 가치가 밀려왔고, 유상곡수 시회는 경주에, 상춘곡은 담양에, 조선왕조실록은 전주의 역사적 가치가 되어왔다.
정읍의 민선시대 20여 년의 시간동안 정읍의 백운 경환화상의 역사가 청주의 역사로 돌변했고, 일재의 문하생 동래부사 송상현의 업적조차 타도로 옮겨져 정읍보다 오히려 부산에서 그 빛을 발하며 부산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표상이 되어있다.
한마디로 정읍의 정체성과 자존심의 회복, 더 나아가 지역화합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정치권의 관심과 노력은 아직 요원하다는 의미다.
지나온 20년을 돌아보면 다가올 미래 정읍의 20년 전을 알 수 있다.
현 상태로 라면 정읍은 여전히 매 선거마다 30%의 개표결과로 모든 단체장의 당락이 결정될 수밖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