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암 관장의 34년의 푸른 별 찾기 상징하는 이미지. / 사진제공 = 전북대국어국문학과 © 이용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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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꿈은 별개다. 최고보다는 최초가 되는 꿈을 꿔라. 꿈은 반듯이 대가를 요구한다. 이루지 못할 꿈도 아름답다. 꿈을 이루는데 가장 큰 방해꾼은 가족이다. 꿈은 패션이 아니라 열정이다."
2009년 3월 27일 한국인 최초로 혜성 ‘C/2009F6’을 발견해 국제천문연맹(IAU)으로부터 그의 성씨를 의미하는 ‘이-스완(YI-SWAN)’으로 명명되게 했던 영월곤충박물관 이대암 관장(59)이 23일, 전북대 최명희 홀 강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대암 관장의 2009년 한국인 최초의 혜성 발견 이후, 2009년 미국 하버드대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 관측소(SAO) 천문전보국(CBAT)은 그에게 천문가들에게 수여하는 ‘에드거 윌슨 상’을 수여한바 있다.
이 관장은 이날 강연에서 "수많은 잠 못 드는 밤을 통해 2010년 5월 7일에는 페가수스자리에서 또 다른 신성을 발견하기도 했다"면서 "청년들이어 꿈을 갖으라, 이루지 못할 꿈도 아름답다"고 젊은이들의 창의적인 꿈꾸기를 주문했다.
전북도내에서는 처음으로 설강된 이대암 관장의 이번 강연은 전북대 ACE사업단이 모범활동가 릴레이 강좌로 주최하고, 전북대 국어국문학과와 과학학과, 농악/풍물굿연구소가 주관해 오전 11시부터 12시 40분까지 전북대 인문대학 최명희홀에서 ‘꿈을 꾸는 법과 이루는 법’이란 주제로 설강됐다.
▲ 젊은이들에게 꿈꾸기를 멈추지 말라고 강조하는 이대암 관장. © 이용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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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장은 이 자리에서 “자동차면허도 없던 어린 나이의 16세 소녀가 혼자서 10.23m(Ella Pink Lady 호)의 요트를 타고 무려 210일 간 시드니를 떠나 태평양을 횡단해서 남아메리카 하단 갭 혼(Cape Horn)을 돌아 대서양과 아프리카 남단, 인도양을 건너 무려 22000노티칼 마일(약 35,200Km)을 단독 항해했던 호주 제시카 왓슨의 사례를 설명했다.
이 관장은 “2010년 5월 15일, 제시카 왓슨(Jessica Watson)이 자신의 요트 엘라스 핑크레이디와 함께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태평양-대서양-인도양을 잇는 42,000Km의 바닷길을 돌아 약 7개월 여 만에 출발지인 시드니 항으로 귀환하자 감격한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서서 2시간 30분 동안을 기다렸다가‘당신은 호주의 새로운 영웅’이라 칭송했다고 전했다.
호주의 새로운 소녀 영웅으로 떠오른 제시카 왓슨이 방송사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친구 여러분, 꿈을 꾸어야합니다. 그 꿈을 믿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도 가능합니다.(You just have to have the dream, believe in it and work hard. Anything is possible)"라는 꿈의 메시지였다.
2009년 10월 18일~2010년 5월 15일 오후 1시 53분까지 홀로 요트 위에 있던 제시카 왓슨의 첫 마디는 "조금이라도 흔들리지 않는 곳에 있고 싶다"였다 면서 안정을 찾은 후 제시카 왓슨이 친구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는 호주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에 빠진 또래 친구들에게 전한 꿈을 갖으라는 것이었다.
이 관장은 1487년 밀라노 대성당을 설계하고, 1490년 파비아 대성당의 설계에 이어 1497년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고, 1503년 "모나리자"를 완성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 지치지 않았던 부푼 꿈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 오늘날의 헬리콥터와 비슷한 형태의 레이나르도 다빈치의 1505년 기구 설계도. / 사진제공 =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이용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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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년 새의 비행 상태와 새의 생리학을 연구해 비행기구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지만 시대적인 기술력 때문에 당시에 꿈을 이루지 못했던 다빈치의 꿈은 그로부터 400년 후인 1907년 프랑스의 고르뉘가 20초간 30cm 정지비행에 성공하며 이루어질 수 있었다며 당장 이루어지지 못하는 꿈도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장은 또 중학시절 물통 사러 등산장비 점포에 들렀다가 산에 입문해 2005년, 후배 최강식과 함께 세계최초로 히말라야 북벽 졸라체(6,440m) 동계등반 도중 크레바스에 빠져, 9일 만에 구조된 박정헌(1971년, 경남 사천생)의 불굴의 의지를 소개하기도 했다.
▲ 꿈을 이룬이들의 미소, 박정헌과 최강식. / 사진제공 =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 이용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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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헌은 그 과정에서 동상에 걸려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 절단 했지만 이듬해 실크로드 대장정 도전, 2011년 페러그라이딩으로 히말라야 횡단에 성공한바 있다.
이밖에도 이 관장은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1873)의 사례와 2011년 우리나라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인근의 아덴 만 해상에서 해적들에게 피랍된 선원들을 구하기 위해 펼쳤던 아덴 만 여명 작전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수술했던 아주대 이정국 교수에 대한 꿈 등 국내와 국외에서 꿈을 꾸고, 꿈을 이룬 사례들을 소개했다.
이어, 이 관장은 잘나가던 건축디자인과 교수와 부총장에서 영월곤충박물관장과 천연기념물곤충연구소장, 별마로 천문대 대장으로 변신하기까지의 약 34년 여 동안의 초록별 찾기의 긴 꿈에 대한 자신의 좌충우돌의 삶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학 1학년 시절, 이 관장은 현대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푸른 별에 대한 성병(星病)에 걸려 한국인 최초로 혜성을 발견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당시 젊은 이대암에게 초록 별인 혜성을 발견하겠다는 불씨는 그가 대학 1학년 재학 시절에 발견한 세계 각국의 혜성 발견 사례였는데, 앞서 우리에게 천문지리를 배웠던 일본은 1919년부터 천문 탐사에 나서 혜성을 발견해 왔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젊은 이대암은 아주대 학부와 홍익대 인문대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설계사무소에서 10여 년을 근무했지만 푸른 별을 찾지 못해 호수로 떠나 택시 기사로 활동하며 학비를 마련, 3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23일 최명희 홀에서 기자와 만난 이대암 관장. © 이용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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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국적을 취득했지만 포기했고, 국내 최초의 초록별 발견을 위해 다시 국내로 들어와 강원도 영월의 건축과 교수로 돌아와 해발 600m의 별마로에 천문대를 짓고 본격적인 푸른 별 찾기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학교에서의 지위는 부총장의 위치까지 올랐지만 별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7년여 만에 정년 20년을 포기한 채 사표를 내고 곤충박물관장이 되어 본격적으로 푸른 별을 찾아 헤맨 지 7년여 만에 혜성을 발견했다.
2009년 3월 27일 당시에 발견한 혜성은 한국인 최초의 발견이었다. 혜성 ‘C/2009F6’을 국제천문연맹(IAU)은 소행성 ‘Minor planet 7602 Yi-swan daeam’이라 명명했다. 별을 찾아 헤맨 지 34년 만에 그 꿈을 이룬 것이다.
▲ 이대암이 발견하고 국제천문연맹(IAU)이 학계에 밝힌 푸른 별 Minor planet 7602 Yi-swan daeam’의 궤도 위치. / 사진제공 =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 이용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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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이후 이대암 관장은 기자의 "우리나라 청소년과 청년들은 얼마나 호주의 제시카 왓슨과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가?"에 대한 질문에 "사실 우리나라 청소년과 청년들의 꿈은 대부분 획일적인 직업에 국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 같은 이유가 우리나라 청년실업의 현주소가 반영한 결과이겠지만 법관이나 의사, 공무원, 군인 등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이 꿈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발상을 진정한 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겠느냐"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