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심판일이 다가오면서 두 보수 정당에서 일제히 '정치적 해법' 주장이 공식 표출되기 시작했다.
탄핵 심판 전(前)에 박 대통령이 하야하는 대신 일정한 사법적 예우를 갖춰주자는 방식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적 차원에선 갈수록 악화하는 국론 분열을 줄이고 정치적으로는 새누리당에서 탄핵 찬반 때문에 갈라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재결합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지난해 12월 초 탄핵소추안 발의·의결 이전에 야권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이제는 정치 상황이 크게 변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적 견지에서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헌재가 지난 22일 증인 심문을 종료한 만큼, 이제 최종 변론과 박 대통령의 출석 문제만 남아 있는 상황에 특검 수사 기간 역시 28일 종료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탄핵 심판 날까지는 약 2주일 정도 남아 있다.
여기서 잠깐 '하야론'을 생각해보면 이미 때를 늦은 선택이고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먼저, 청와대부터 하야론에 대해 일축하고 있다.
하야하더라도 탄핵 심판 결정은 그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집권을 당연시하는 야당이 응할 가능성도 별로 없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심각한 후폭풍은 물론 경제‧안보 위기에다 대선까지 겹치면서 정치적 내전이 닥치지 않도록 정치권은 국민의 걱정을 이해한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최악을 회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의무가 있다.
아울러, 조기 대선 분위기가 가열되는 상황에 '분노의 정치'가 새로운 논쟁거리로 떠올라 착잡할 따름이다.
야권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한다는 것을 전제로 생각해보면 과연 어떤 기조로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면서 정국을 이끌어가야 하는가 하는 논란에 직면하게 된다.
탄핵정국이 이어지는 와중에 야권이 차기 정권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 이 논란은 앞으로 우리 정치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담론이기도 하다.
논쟁이 야권에서 벌어지는 것이 그런 때문이다.
그것도 현재 지지율 1~2위를 달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주자들 간의 논쟁이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 "사람의 마음은 선의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가 "말 속에 분노가 담겨 있지 않다"고 공격하자 안 지사는 다시 "지도자의 분노는 단어 하나만 써도 피바람을 불러 온다"고 응수한 것이 지난 며칠 사이의 일이다.
문 전 대표가 "분노는 정의의 출발"이라고 지적한 것이 그런 때문일 것이다.
불의에 대한 뜨거운 분노가 있어야만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안 지사는 "광화문 광장에 앉아있을 때는 열을 받지만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될 지도자로서 분노라는 감정은 너무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안 지사가 처음 논쟁을 유발한 '선의'라는 표현에 대해 결국 사과의 뜻을 표명한 상황에서도 '분노의 정치' 논쟁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검찰‧특검 수사로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례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 지지표가 상당 부분 야권으로 기울고 있는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정권 비리에 대한 민심의 동향을 짐작하게 된다.
물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법치주의가 그 근간이 돼야 한다는 논리다.
그동안 정의가 허물어진 데는 법치주의가 제대로 가동하지 않은 탓이 크기 때문이까 말이다.
'분노'의 감정을 완전히 억눌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감정이 앞세워질 경우 필연적으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게 되고 따라서 보복의 악순환을 초래할 뿐이다.
분노를 최대한 조절하면서 법과 제도 안에서 정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보수‧진보' 정권 모두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