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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또다시 재현된 창무극 '천명'
제50주년 황토현동학농민혁명기념제… 특별기획 공연
이용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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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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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1994년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랐던 창무극 '천명(天命)'이 지난 12일~13일 동학농민혁명의 첫 전적지인 황토현 특설무대에 "2017 천명"으로 재연되고 있다.     © 이용찬 기자

 

▲  정읍시립 정읍사국악단 왕기석(왼쪽) 단장과 김용옥(가운데‧극본 도올),  송하진(오른쪽) 전북도지사가 공연 직후 환하게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용찬 기자

 

 

 

23년 전 초연된 창무극 '천명'은 도올 김용옥의 대본을 당시 환상의 제작 궁합을 자랑하던 음악의 박범훈연출 손진책안무 국수호 등이 공동으로 참여해 일제강점기 처음 도입된 이후 다양한 변천사를 거쳤던 기존의 창극에 1980년대 마당극과 마당놀이 형태로 좀 더 진보된 창무극 '천명'으로 무대에 꾸며져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바 있다.

 

이번에 황토현에서 재현된 창무극 '천명'은 지난 1994년 초연 당시 천명의 주인공 '전녹두'역을 맡았던 정읍시립 정읍사국악단 왕기석 단장이 첫 초연의 인연을 계기로 제50주년 황토현 동학농민혁명 기념제 무대에서 재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 끝에 재 각색 과정을 거쳐 좀 더 업그레이드 된 창무극 형태로 꾸며져 초연을 뛰어 넘는 호평이 쏟아졌다.

 

지난 12일과 13일 공연을 앞두고 무대에 올라 창무극 '천명'의 작품과 각색 배경을 설명했던 도올 김용옥은 "동학농민혁명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던 민중들의 총체적 열망의 표출이었다"며 창무극 천명에 대한 극적 완성도를 설명했다.

 

이날 공연 '천명'은 전북도와 정읍시가 공동 주최하고 전북도립국악원과 정읍사국악단‧()마당극패 우금치가 주관해, 반주 악에 맞춰 기존의 창극과는 달리 각각의 배열들이 각각의 소리와 춤과 몸짓으로 주연 배역들의 극적 진행에 완성도를 높여주는 "신 창무극"형태로 시작됐다.

 

암전 후 첫 장면은 수많은 동지들의 죽음 사이로 포승줄에 묶인 전봉준이 형장으로 끌려가 재판을 받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전봉준은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일진대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가는 사람에게 내 피를 뿌려주는 것이 가할진대 어찌 컴컴한 적국 속에서 암연히 죽이은가?"를 외친다.

 

암흑의 시대, 희망 없는 삶에 더 이상 살길마저 막막해진 농민들은 보은 집회를 계기로 가혹한 현실을 탈피하기 위한 봉기를 외쳐보지만 해월의 대답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는 일갈로 민중들이 흩어지는 상황이 연출된다.

 

기존의 삼정에 수세까지 더해진 상황에서 수세감면을 요구하던 전창혁이 태형으로 숨지고 농민들은 전봉준을 찾아가 봉기의 선두에 서줄 것을 종용한다.

 

그렇게 지펴진 불씨는 들불처럼 번지고 짧은 승리의 함성이 울리지만 뒤이어 안핵사 이용태의 천인공노할 만행이 이어진다.

 

모두가 백산에서 만나자며 안핵사의 만행에 대한 응징을 다짐한다. 백산에 운집한 농민들의 군영은 황토현으로 이어지고 전라감영군의 급습은 전봉준의 노련한 전술에 의해 허무한 패배를 당한다.

 

사기가 충전한 농민군의 기세는 황룡촌에서 신식무기로 무장한 서울의 경군까지 격파하고 전주로 입성한다.

 

하지만, 환호와 함께 드리워진 암전 후 무대에는 팔자걸음에 오만방자한 청나라 군인들이 등장하고 무대 한편에서는 검은 제복을 입은 일본군들이 쾌재를 부리며 "이제야 빌미가 생겼다"며 박장대소를 터트린다.

 

사태를 주시하던 전봉준은 김학진과 전주화약을 체결하고 집강소 시대를 연다.

 

호남은 53개소 집강소를 통해 염원하던 평화가 찾아왔지만 왜군과 청군은 남의 땅 이곳저곳에서 전쟁을 벌인다.

 

대국 청나라는 섬나라 일본에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이제 우리의 땅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재 기포의 횃불이 다시금 들불처럼 번진다.

 

황토현의 승리와 황룡촌의 승리를 지켜보며 숨죽여 움츠려있던 남접들이 재봉기에 합류하고, 그렇게 더 사기가 오른 연합군은 횃불을 치켜세워 공주로 향한다.

 

간악한 일군은 관군을 앞세워 격전을 벌인 뒤 승승장구하며 전진하는 농민군을 하나하나 조준 사격하고 뛰고 달리던 농민군은 차례차례 스러져 무대를 채운다.

 

농민군의 시신을 끓어 앉은 아낙들은 함께 죽을 것을 고민하지만 슬픔을 헤치고 뛰며 울부짖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직 남은 천명의 완수를 다짐한다.

 

다시 무대는 영웅의 장렬한 죽음을 바라보며 또다시 천명의 의미를 되새긴다.

 

"천명은 살아남는 것이다. 선인들의 죽엄은 헛된 것이 아니다. 지금의 삶은 선인들의 피와 땀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천명은 그 헛되지 않은 죽음들을 알리는 것이다. 백성은 역사의 살아 있는 맥이다. 도도한 물길은 백성의 힘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성난 물은 배를 엎을 수도 있다. 백성은 살아남아 이 역사를 이었다."

 

산자들에게 남겨진 천명이 이미 스러져 사라진 선인들의 천년 숙원이던 신불차별의 적폐와 탐관오리들의 패정을 깨뜨리는 것이었다면 "2017 천명"은 도올이 일간했던 동학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던 민중들의 총체적 열망의 표출이었다의 또 다른 외침이었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공연 직후 기자의 질문에 "다시금 동학농민혁명의 암울하지만 장쾌했던 역사를 되짚어 보게 하는 공연이었다"며 감동의 무대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도올 김용옥은 "원작과 달라진 '2017 천명'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번 무대의 모든 각색은 자신이 한 것"이라며 "이번 공연에 대한 미련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이 없다면 이후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창무극 '천명'은 이미 교조신원 운동 시기부터 민중봉기를 외치던 전봉준을, 전창혁의 사후 농민들의 요구로 봉기에 나서게 되는 배경으로 설정했다.

 

전창혁의 사후 전봉준이 차치구에게 종용했던 고부봉기의 설정으로 대신 각색되었다면 이러한 억지 설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첫 고부봉기의 주된 의미인 '제폭구민'과 '보국안민'의 시대적 상황을 ‘'국안민'과 '척양척왜'재봉기적 성격으로 설정함으로써, 시기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역사에 근거한 대하극의 성격상 시기적으로 다변화 되었던 상황을 각색과 연출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 것이 극의 진정한 완성도가 아닐까.

 

무장포고문 상황을 배제한 것은 지역적 갈등을 배려한 극중 설정일 수 있지만, 무장포고문은 전봉준옹택규김평창(김상태)으로 이어지던 지역 정읍에서의 또 다른 역사의 단면이자 민과 관이 공동으로 새 세상을 도모하던 선진적 대 통합을 배제하는 설정이 될 수 있다.

 

또한 고부군에서 무장으로 그리고 다시 백산으로 이어지던 상황들은 모두가 극비 상황으로 최근에야 그 시기적 사건들이 정확한 일정들과 함께 공포되고 있기 때문에 청관중들에게 당시의 백산봉기 상황을 좀 더 어필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대사보다 인지적 행위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이 극의 완성도를 높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야외 특설무대의 특성상 극중 전쟁 씬을 재현하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경군의 수장 홍계훈과 전봉준이 정면으로 대치했던 황룡촌 전투가 하루 일정 차이로 전투가 일어나지 않고, 전주입성으로 입성이 이루어졌다는 설정은 자칫 동학농민혁명 역사의 전체 기반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한 설정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이 수탈자와 피 수탈자로 양분되는 거대한 신분차별의 적폐로 희망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기름을 끼얹듯 수세가 더해지며 저항으로 시작된 민중봉기였다면, 황토현 전투는 관의 입장에 섰던 관의 관비 무부(巫夫)들과 새 세상을 도모하던 농민과 역시 또 다른 무부들의 혁명이자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농민혁명의 첫 전적지인 황토현 특설무대를 찾았던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작품으로 서울 예술의 전당에 올랐던 작품의 감동을 다시금 23년 여 만에 다시 황토현에서 재현해 보고자 하는 기대감이 아니었다.

 

황토현에서의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는 이전과 달리 황토현 전투에서의 또 다른 의미를 찾아볼 역사적 교훈과 역사적 사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부푼 기대가 있었고 "2017 천명"은 서울 공연에서의 첫 공연을 뛰어 넘는 그 이상의 기대에는 충족해 주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겼다는 것이다.

 

때문에 뒤 이어질 "2018 천명"과 "2019 천명"이  '2017 천명'에 비해 더 큰 감동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1인 영웅 체제의 설정이 아니라 또 다른 동학농민혁명사의 교훈적 측면들을 이전 보다는 더 다양하고 파고드는 내용의 선진적 각색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2017 천명"이 '1994 천명'과 크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극평을 듣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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