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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독립운동 현장을 찾아… (2)
연해주 고려인들의 삶, 희망, 그리고 희원(希願
이용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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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5/18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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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는 공해상.      ©이용찬 기자

 

한국과 러시아는 현재 지리적, 역사적 측면에서 상호 밀접한 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다.

 

그중에서도 고려인(카레이스키)들이 거주하는 연해주 지역은 근대기 첫 이주라고 회자되는 조선 후기 1863년 경 함경도 농민 13가구의 이주에 앞서, 우리민족 기원이 되는 고조선 지역으로 고구려, 발해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뿌리이자 약속의 땅이었다.
 
하지만 1,000년 여 동안 그 땅은 우리와 단절된 채 버려져 있었고, 19세기 후반 정세의 불안 속에서 탐관오리들의 수탈로 기아에 허덕이던 선인들이 두만강을 건너 처음 이주가 시작되기 시작하면서 연해주는 다시금, 우리 한인들의 새로운 역사로 편입된바 있다.

 

▲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김익두,  이태영 교수.      ©이용찬 기자

 
그 시기부터 우리 민족의 뿌리이던 척박한 땅 연해주는 우리민족의 삶과 희망, 그리고 희원(希願)의 땅이 되어왔다. 새 희망을 찾아 연해주에 처음 정착했던 1세대 고려인들의 삶은 그야말로 생명을 위협하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범접하기조차 힘든 언 땅을 일궈야 하는 가혹한 삶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 혹독한 땅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심었고, 오늘날의 옥토로 일구어왔다. 또한 그 1세대 고려인들은 희망 없이 표류하던 우리의 국권이 속절없이 스러지고 말았을 때도 그들은 목숨을 걸고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한 끝없는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이어왔던 우리민족의 마지막 자존심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 연해주 고려인들의 애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 위한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제34차 학술문화기행이 지난 10.() ~ 14.()까지 45일 동안 러시아 현지에서 진행됐다.

 

이번 기행에는 국어국문학과 학생 23, 교수 5명 외 강사 및 조교, 대학원생 등 10명을 포함한 전체 38명의 구성원들이 학술기행에 참여했다.
 
학술문화기행의 여정은 전주동해항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블라디보스토크동해항전주의 일정으로, 인접 국가인 러시아 역사·문화 탐방을 통해 발해의 역사유적 및 고려인 문화, 항일독립운동 근거지 등을 주요 탐방 코스로 돌아보는 순서로 진행됐다.

 

▲ 혁명광장에 설치된 볼셰비키혁명 조형물.     ©이용찬 기자

 


이를 위해 학술기행단(단장 김익두 교수)1006시 전북대학교 인문대 앞에 집결해 동해항으로 이동했다.

 

동해항에서 DBS 크루즈 페리호에 승선, 11일 오후 2시께 블라디보스토크 국제항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의 주도(州都)로서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북한, 중앙아시아를 잇는 극동의 관문이며, 천혜의 부동항(不凍港)으로써 태평양 연안으로 진출하는 군사전략적 요충지다.

 

또한, 총연장 9,288km에 달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으로 국제무역과 물류가 이루어지는 제정 러시아의 대표적인 경제적 전진기다.


학술기행단은 지난 10일 오전 6시 전북대 인문대를 출발, 동해 국제항 여객터미널을 통해 23시간의 긴 항해를 통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지만 현장에 도착한 첫날부터 예정된 일정을 쉼 없이 시작했다.
 
현지에 도착한 학술기행단 일행은 가이드 정무순 씨의 안내로 첫 코스인 블라디보스토크 혁명광장으로 향했다.
 
러시아 전역에 산재한 혁명광장은 1905년 굴욕의 러·일 전쟁에서 이후 각 사회단체에서 불거진 불만이 폭동으로 번지며, 피의 일요일 등의 내란과 1917년의 연이은 혁명을 계기로 300년 이상 지속되어온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활제 니콜라이2세가 급기야 퇴위를 선언함으로써 볼셰비키(러시아공산당)에게 승리를 안겨줬던 혁명 기념 광장이다.

 

 

▲  혁명광장에 들어선 시장에서 농산물과 생필품을 팔고 있는 현지 여성.      ©이용찬 기자

 


현재까지 러시아 당국은 당시의 볼셰비키 혁명을 러시아 전역에서 기념하고 있으며, 주요 거점 지역마다 혁명 광장에 기념물을 설치하고 그날의 혁명을 기리고 있다.

 

주된 이유는 당시의 혁명이 러시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10월 혁명 직후 볼셰비키는 사회혁명당 좌파를 제외한 다른 혁명그룹들과 권력을 나누어 갖지 않으려 했고, 마침내는 경쟁관계에 있던 모든 정치조직들을 탄압하며 19183월 러시아 공산당으로 명칭을 바꿨다가 192512월 전 연방을 볼셰비키으로 바꿨다.
 
이후 다시 195210월 소비에트연방(Kommunisticheskaya Partiya Sovetskogo Soyuza/KPSS)으로 명칭을 변경했다가 1990년대 현재의 러시아 연방으로 명칭을 변경한바 있다.

 

 

▲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술기행단이 혁명광장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용찬 기자

 

전북대학교 학술기행단이 혁명광장을 찾았던 지난 11일은 마침 1990년대 들어 구소련이 해체된 뒤 러시아의 개혁정책 일환으로 시행된 상설시장이 혁명광장에서 열리고 있었다.

 

학술기행단은 이곳에서 때 아닌 장보기를 통해 일반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에서 구매하는 금액보다도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러시아의 농산물과 생필품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 니켈 등의 천연자원들은 풍부하지만 부존자원과 관련 산업들이 체계적으로 육성되지 못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농산물을 제외한 생필품들의 가격이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학술기행단에게 상설시장은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 제2차세계대전 참전 시기를 알리는 숫자와 러시아 정교회의 모습./     ©이용찬 기자

 


혁명광장에 이어 두 번째로 방문한 역사의 현장은 인근 5분 거리에 위치한 잠수함 박물관, 니콜라이 2세 개선문, 러시아 정교회 등이 위치한 영혼의 불꽃 거리제단 이었다.
 
러시아 곳곳에는 당시의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던 레닌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지만 영혼의 불꽃제단 인근에는 레닌의 동상이 없다.

 

대로 옆 거리에 위치한 잠수함 박물관 옆으로 영혼의 불꽃 제단이 위치해 있고, 좌측에 전쟁 참전 연도인 1941년과 종전 년도인 1945년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으며, 그 인근 주변은 참전 용사들을 의미하는 조명물들이 위치해 있다.

 

▲  잠수함 박물관 옆에 위치한 영혼의 불꽃 앞에 러시아 경찰이 수직하는 모습./     ©이용찬 기자

 

2차 세계대전은 193991일부터 194592일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전쟁으로, 구소련은 막대한 희생을 치르고도 명예뿐인 전승국으로 전락된바 있다.
 
러시아는 2014년 기준, 전체 면적이 한반도의 78배이자 미국의 1.8배인 17098천여로 세계 1, 인구는 약 14247만여 명으로 9, 국내총생산(GDP) 2573억 달러로 9위 등 각종 통계상으로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군사 강국이지만 여전히 세계 최대의 실업률과 역시 최악의 고물가 시대에 직면해 있다.

 

 

▲ 박물관에 전시된 잠수함.     ©이용찬 기자

 


잠수함 박물관과 영혼의 불꽃제단, 니콜라이 2세 개선문, 러시아 정교회 등을 둘러보는 첫째 날 코스는 잠수함 박물관을 끝으로 첫날 탐방이 마무리됐다.

 

학술기행단은 현지 기행을 마치고 석식 장소인 카페 카페리한국식당에서의 석식 이후 숙소인 손니치늬 문화 센터(호텔)’로 향했다.
 
◈ 사진으로 보는 전북대학교 블라디보스토크 학술기행
 

▲  제2차세계대전 구소련 병사들의 참전을 의미하는 조형물.     ©이용찬 기자


 

▲ 잠수함 박물관 뒤쪽에 위치한 러시아 정교회./     ©이용찬 기자

 

▲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던 니콜라이 2세를 기념하기 위한 개선문./     ©이용찬 기자

 

▲ 전북대학교 학술기행단이 잠수함 박물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용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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