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안이 낳은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시인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의 첫사랑인 촌은(村隱) 유희경(1545~1636)의 후손들이 13일 매창의 묘소가 있는 전북 부안읍 서외리 매창공원을 찾아 묘제행사를 거행한 뒤 부안군 문화관광해설사(오른쪽)에게 430년 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 = 이만수 객원 사진국장 © 김현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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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이 낳은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시인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13일 묘소가 있는 전북 부안읍 서외리 매창공원에서 열렸다.
430여 년 전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의 이날 추모식 행사는 이매창의 첫사랑인 촌은(村隱) 유희경(1545~1636)의 11대 후손 유재일 회장이 제주로 술을 따르고 묘제행사를 거행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묘제는 ▲ 참사자서립(參祀者序立) ▲ 진찬(進饌) ▲ 강신(降神) ▲ 참신(參神) ▲ 헌작(獻爵) ▲ 부복(俯伏) ▲ 사신(辭神) ▲ 철상(撤床) ▲ 음복(飮福) 등으로 이뤄졌다.
이날 유희경의 후손들은 매창(梅窓)이 첫사랑을 애타게 그리워했던 "소나무처럼 늘 푸르자 맹세했던 날 / 우리의 사랑은 바닷속처럼 깊기만 했어라 / 강 건너 멀리 떠난 님께선 소식도 끊어졌으니 / 밤마다 아픈 마음 나 홀로 어이할까나" 시(옛님을 그리워하여)를 낭송하며 뜻을 기렸다.
20살의 매창(梅窓)과 48세의 촌은(村隱) 유희경은 만나자마자 시(詩)에 젖고 사랑에 빠졌으나 1년 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촌은은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고 면천을 받아 양반으로 신분상승과 함께 종2품 가의대부까지 승승장구했다.
유희경에 대한 소식을 접한 매창은 마음의 거리가 갈수록 더 멀어짐을 느끼며 사무치는 그리움과 회한을 시로 승화시켰다.
15년의 긴 기다림 끝에 재회한 유희경은 매창과 열흘간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매창 또한 관에 매인 기생의 몸으로 부안을 떠날 수 없었고 첫사랑인 유희경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시조에 담았으며 절개를 지켰다.
한편 '부안 매창공원(40,900여m² 규모)'은 조선시대 대표 여류시인인 이매창의 묘가 있는 곳으로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됐으며 '이화우 흩날릴 제' 등 14기의 시비가 건립돼 있다.
☞ 아래는 위 기사를 구글 번역이 번역한 영문 기사의 '전문' 입니다.
구글 번역은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영문 번역에 오류가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Below is the 'full text' of the English article translated by Google Translate.
Google Translate is working hard to improve understanding, and assumes that there are errors in the English translation.】
In memory of 'Lee Mae-chang', the greatest female poet of the Joseon Dynasty
The village is a descendant of Yoo Hee-kyung… Celebrating the meaning of 'myoje event' at Maechang Park
Reporter Kim Hyun-jong
A memorial ceremony was held in Maechang Park, Seooe-ri, Buan-eup, Jeollabuk-do, on the 13th to commemorate Lee Mae-chang(1573-1610), the best female poet of the Joseon Dynasty, born to Buan.
The memorial ceremony for this beautiful love story from 430 years ago was held in the order that Chairman Yoo Jae-il, the 11th descendant of Chon-eun Yoo Hee-gyeong(1545-1636), Lee Mae-chang's first love, poured alcohol to Jeju and held a funeral ceremony.
The cemetery is ▲ Confession of the deceased ▲ Jinchan(進饌) ▲ Gangsin(降神) ▲ Novelty(參神) ▲ Offering offerings(獻爵) ▲ Profanity(俯伏) ▲ Reaper(辭神) ▲ Iron statue(撤床) ▲ Yinbok(飮福) etc.
In particular, Yoo Hee-kyung's descendants said, "The day I swore to be always green like a pine tree / Our love was only as deep as the sea / Because the news from someone far away across the river was cut off / Night I remembered the meaning by reciting the poem(I miss you)."
20-year-old Mae-chang and 48-year-old Chon-eun Yoo Hee-kyung fell in love with poetry as soon as they met. After receiving this award, he rose to his status as a nobleman and rose to prominence as the second-class family medical godfather.
When Mae-chang heard the news about Yoo Hee-kyung, he felt that the distance between his heart and mind grew further and further, and he sublimated the longing and remorse into poetry.
After 15 years of waiting, Hee-kyung Yoo, who was reunited after a long wait, said goodbye to Mae-chang after a brief reunion for 10 days.
Mae-chang also could not leave Buan as a gisaeng tied to a coffin, and he kept his incision by putting his longing for his first love, Yoo Hee-kyung, in the Sijo.
Meanwhile, 'Buan Maechang Park(40,900m²)' is the tomb of Lee Mae-chang, a representative female poet of the Joseon Dynasty, and was built to commemorate 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