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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대뫼마을, 동학농민혁명 홍보관 개관
녹두회관 리모델링, 혁명 자료 전시
이용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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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3/1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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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대뫼(주산)마을 동학농민혁명 홍보관 개관에 앞서 김생기 정읍시장과 우천규 정읍시의회의장 등을 비롯한 유관기관 단체장  등이 테이프 컷팅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용찬 기자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앞서 1893년 최초로 사발통문이 작성됐던 전북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 대뫼(주산)마을의 녹두회관이 시설 구조변경을 통해 10일 "동학농민혁명 홍보관" 으로 새롭게 개관됐다.


이날 개관된 "동학농민혁명 홍보관" 은 기존 녹두회관 2(1층 경로당) 회의실을 동학농민혁명 홍보관으로 구조를 변경, 132규모에 둥지를 틀었다.

 

특히, 홍보관에는 당시에 작성됐던 사발통문의 사본을 비롯 거사계획에 참여했던 송대화의 동학대접주 임명장 등 사발통문 거사계획 자료 등 많은 역사적 사료가 전시돼 있다.


189311, 대뫼(죽산)마을 송두호의 집에서 전봉준, 최경선, 김도삼 등 동학농민혁명의 주요 지도자 20

명이 작성했던 사발통문 거사 계획에는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을 죽일 것,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것, 군수에게 아첨하여 백성을 괴롭힌 탐관오리를 엄하게 징벌할 것, 전주성을 함락하고 경사(서울)로 직행할 것 등 4개 항의 결의사항이 담겨져 있다. 

사발통문 거사 계획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갑작스런 익산군수 발령으로 보류됐다가 조병갑이 익산으로 떠나지 않고, 전라감사 김문현을 통해 고부군수로의 유임을 요구, 다시 이듬해 110일 부임하자 10, 계획대로 고부관아를 점령함으로써 거사가 성사됐다.


당시 고부관아 점령을 계기로 동학농민혁명은 이후 현재의 고창군 무장과 현재의 부안군 백산대회를 정점으로 거치며 본격적인 동학농민혁명군의 진용을 갖추고 전국적인 혁명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9월 초 삼례에서 촉발된 2차 봉기가 좌절된 이후 사발통문거사계획을 결의했던 대뫼 마을은 오랫동안 반란역적의 상징이 되어 숱한 고난을 겪어야 했고, 사발통문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자취를 감췄다.

 

 

▲  김생기 정읍시장과 우천규 정읍시의회 의장이 홍보관에 전시된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제공 = 정읍시 홍보실 박석희     © 이용찬 기자

 


현존하는 사발통문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1968년이었다. 후손들 중 뜻있는 분들의 후원에 따라 마을 입구에 "동학혁명모의탑" 을 건립하면서 대뫼 마을은 동학농민혁명의 최초 발상지로서의 위상을 갖추게 됐다.


이후 1994년에는 대뫼마을 회관 전면에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 을 건립했으며 '사발통문거사계획을 결의한 집터'와 '동학혁명모의탑, 무명동학농민군위령탑' 등 동학농민혁명을 최초로 준비했던 마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지와 시설물들이 모두 집약돼 매년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날 개관식에서 김생기 정읍시장은 "혁명의 근원지인 대뫼마을에 동학농민혁명 자료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홍보관이 들어선 것을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 면서 "이곳을 찾아오는 많은 탐방객들이 홍보관을 통해 다시금 동학농민혁명의 참 뜻을 이해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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