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시심(詩心)을 부르는 부안의 해넘이
【 칼럼 = 김종규 부안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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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7/15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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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바닷가에 해는 기울어집니다. ! 내가 미술가(美術家)였다면 기우는 저 해를 어여쁘게 그릴 것을.”

 

부안이 낳은 시인 신석정은 유독 저물녘의 풍경을 시 속에 많이 담았다.

 

위에 인용한 시는 기우는 해라는 제목의 시로, 1924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석정의 대표작인 어머니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라는 시의 첫 행도 저 재를 넘어가는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 어머니 아직은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라고 노래하고 있다.

 

신석정 시인이 석양을 노래했던 이유는 필시 그가 나고 자란 땅이 이곳 부안땅, 변산반도이기 때문이리라.

 

시인의 가슴에 변산바다의 해넘이는 주체할 수 없는 시정(詩情)을 지폈음이 분명하다.

 

얼마나 마음에 사무치는 광경이었으면 내가 미술가였다면 기우는 저 해를 어여쁘게 그릴 것을이라고 안타까이 노래했겠는가.

 

꼭 위대한 시인이 아니어도 부안의 해넘이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서정이 깃들어 있다.

 

동해의 일출과 서해의 낙조를 놓고 우열을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나, 일몰에 한해서라면 단연코 서해(西海), 그 중에서도 부안의 해넘이를 첫 손가락에 꼽고 싶다.

 

일출이 사람의 가슴에 벅찬 희망과 시작의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면 낙조는 차분한 다짐과 인생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선물해 준다.

 

일출이 이제 막 신발끈을 맨 이의 활력을 상징한다면 일몰은 여정을 마친 자의 편안함과 느긋함, 지나온 시간에 대한 깊은 응시를 담고 있다.

 

또한 해넘이는 새로운 부활의 상징이자 영겁을 순회하는 자연의 이치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현상 중 하나다.

 

해넘이가 낙조니 석양이니 일몰이니 저녁노을이니 하는 가지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도, 마지막 사그라지기 직전 천변만화하는 태양의 움직임과 보는 이의 감수성을 한 가지 말로는 다 담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이 똑같은 시간의 반복처럼 보여도 하루의 마감이나 한 해의 마감을 당하여 저무는 해를 바라보는 심사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서해바다 속에 잠기는 해넘이는 그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많은 이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해넘이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서해안 안면도를 꼽는 이들이 있지만, 그것은 부안의 해넘이 명소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부안에는 혼자만 보기에는 아까운 몇몇 해넘이 명소가 있다.

 

그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는 곳이 채석강이다.

 

199912, 20세기를 마무리하는 장엄한 해넘이 명소로 부안 채석강이 선정됐다.

 

당시 모 언론사 기자는 한 세기를 마감하는 해넘이 장소로 부안 채석강을 꼽고 명칼럼을 남겼다.

 

아시다시피 채석강은, 중국의 시성 이태백이 뱃놀이 중 물에 비친 달에 반해 뛰어들었다가 죽었다는 그 채석강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이태백은 달에 반해 물속에 뛰어들었지만 채석강의 낙조 또한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고 싶을 만큼 아련하면서도 강렬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수선스럽던 바닷가는 이내 적막에 싸인다. 잔잔한 바다 위로 사부작 사부작 내려앉는 태양의 안착을 목도하려는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춘 덕분이다.() 이즈음 석양빛에 물드는 것이 어찌 채석강 바위뿐일까. 흰 구름도, 사람들 눈동자도, 갈매기의 부리까지도 발갛다.”

 

그 기자가 쓴 시적인 칼럼의 일부다.

 

해가 내려앉는 모양을 사부작 사부작이라는 의태어로 표현한 것이며, 갈매기 부리까지도 발갛게 물드는 해넘이의 찰나적 순간을 눈앞에 보고 있는 듯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채석강의 해넘이가 왜 아름다운지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부안의 두 번째 해넘이 명소는 격포항이다.

 

격포항은 옛 수군의 근거지로 조선시대 때는 전라우수영 관할의 진이 있었던 곳이고, 해상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주변의 채석강, 수성당, 적벽강, 격포해수욕장 등과 어우러져 최고의 관광지이고 무엇보다 해넘이를 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채석강과도 지척이니 시간만 잘 맞추면 두 군데의 일몰을 같은 날 감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많은 입소문의 주인공은 이름마저 어여쁜 솔섬이다.

 

썰물이 지는 바닷 속 작은 바위섬 위에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고 그 뒤로 물결처럼 번지는 선홍빛 낙조가 있다.

 

솔섬의 낙조는 보는 이의 가슴을 탁 막히게 하는 감동이 있다.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정 앞에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쁘다.

 

사진작가들의 단골 출사지로 유명한 솔섬은 아무런 즐길 거리도 없건만 오로지 아름다운 낙조 하나로 관광명소가 됐다.

 

외로운 바위섬과 낙락장송, 그 위를 적시는 붉은 노을은 자연만큼 아름다운 관광콘텐츠가 없음을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채석강이나 솔섬이 아니어도 해지는 변산의 바다는 어디에서 보아도 아름답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우리가 충분히 즐길 만큼 해넘이의 순간은 길지 않다는 것이다.

 

인생이 우리에게 무한정의 시간을 부여해주지 않듯이, 해가 지는 강렬한 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가 읊는 대사처럼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만, 해가 지는 그 순간의 고즈넉함과 장엄함은 말로 하지 못할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해넘이를 가장 잘 감상하는 사람은 그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는 사람이다.

 

해 지는 순간의 숭고함을 가슴 가득 품었다면 이제 발길을 돌려 생선들이 팔딱이는 격포항으로 가보자.

 

인생의 쓴맛과도 같은 소주를 한 잔 걸치고 해넘이의 쓸쓸한 잔영이 남아 있는 격포항을 바라보노라면 아무리 목석같은 사람이라도 시심이 동하여 시를 한 잔 술의 안주거리로 삼고 싶어”(위의 칼럼 )질 것이다.

 

저 붉게 지는 해 앞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시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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